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그 소년 (1)

불안했던 나의 고교시절 짝사랑 이야기

by 흔한여신

오랜만에 ‘놀면 뭐하니’를 제시간에 본방송으로 챙겨봤다. 마음 배달을 위해 사연을 전달한 이 중에는 중학교 때 짝사랑한 오빠를 만나고 싶다는 여자가 있었다. 전국으로 송출되는 방송에서 옛 첫사랑을 찾는다니, 용기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그거 그린라이트였을까?’ 하는 의문을 지우지 못한 채 살아왔음을 당당히 고백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 때의 그 순수한 감정은 아직 때묻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마 상대도 관심이 없진 않았겠지라는 생각으로 둘의 만남을 지켜보며 나도 어느새 방청객마냥 꺅꺅 거리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나의 첫사랑이 떠올랐다. 한 때는 가슴 시리도록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어느 새 마음에서 멀어진 그 때 그 소년이.


환히 빛나는 가운데 피어난 너에 대한 마음의 꽃, photo by. 흔한여신



때는 고등학교 시절. 나는 남녀공학에 진학했다.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 가치를 중시여기는 사회적 풍토 때문에 보통 여자반, 남자반으로 나뉘거나 아예 여고, 남고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내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합반이었고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거리 만큼 눈 맞을 확률도 높았더란다. 일부 선생님들은 학업에 방해가 된다고 커플을 갈라놓기 위해 애쓰기까지 했지만 다들 한창 연애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3년 간 대입을 함께 준비할 경쟁자이자 동료이자 한편으론 언제든 썸 탈 준비가 되어 있는 잠재적 연애 대상자였다.


그 때의 나도 한창 연애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여중을 다니면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랄까, 남자친구에 대한 환상만 잔뜩 키워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과는 사뭇 달리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탓에 남자들과는 말도 잘 섞지 않았다. 나이를 불문하고 남자들과 어울려 노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지금의 나랑은 너무 달랐다. 그러니 연애사업에 진척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멀리서 지켜만 보면 썸이 타지지가 않는데 나는 표현하는 게 쑥쓰러웠다. 사실 연애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그 시절 나는 잘 나가는 친구들 틈에서 한껏 의기소침해 있었고 솔직함과는 거리가 먼 내성적인 아이였다.


잘 놀 줄도 몰랐고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닌 나는 포지션이 참 애매했다. 애초에 그 어린 나이에도 해외 등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온 친구들과 나는 비교가 안됐다. 집, 학교, 학원을 돌며 생활했던 나는 그저 맹목적으로 공부에 매달린 모범적인 아이였을 뿐이었다. 내 감정 표현을 하는 것도 어색해 했기 때문에 남들은 내가 어떤 아이인지 어떤 매력이 있는지 알기가 힘들었을 거다. 그냥 조용한 그리고 미미한 존재감이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 때 느꼈던 자괴감과 좌절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망령처럼 따라붙어 날 힘들게 했다.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이 시기에 생겨났고 꽤 강하게 뇌리에 박힌 탓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가 생각보다 더 나은 사람이란 걸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런 내 눈에 어느 날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이름 대신 이니셜을 붙이자면 그는 K였다. 그는 호리호리한 체형에 안경을 꼈고 밝은 갈색빛이 도는 머리칼을 가졌다. 민경훈을 살짝 닮은 외모에 많은 여자 애들이 이미 그를 흠모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기 있는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실 처음엔 별 관심이 없었다. 남들한테 많은 관심을 받고 살아 좋겠다 하는 게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같은 반 친구 누구누구가 좋아하는 남자애. 나랑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에 불과했다. 당시 나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호감은 쉽게 가졌는데 딱히 좋아한다는 감정이 드는 사람은 없었다. 일시적으로 좋았다가 다시 관심이 없어지길 반복했다. 그렇게 별 소득 없이 고교 1학년 생활이 끝났다.


함께여서 더 아름다운 풍경, photo by. Jundori


겨울이 지나고 2학년이 되었다. 당시 나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등을 지게 되었는데 정확한 이유는 가물가물하지만 오랜 시간 내가 그 친구에게 쌓인 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싫으면 싫다 불편하면 불편하다 잘 말했으면 됐을텐데 그 감정을 쌓아뒀던 거다. 표현이 정말 서툴렀던 만큼 결국 그 친구와는 절교를 했고 졸업할 때까지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등을 돌리게 됐지만 지금도 그닥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친구는 아니다. 여하튼 여자들의 세계에서 무리를 이탈했다는 건 중차대한 문제다. 같이 놀 무리가 없으면 혼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정글의 법칙에서 나는 절망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때의 기억은 친구관계에 대한 회의감의 밑바탕이 되었고 지금은 혼자가 더 편하다고 느낀다. 내 안에 잠재된 독립심은 세월이 흐른 지금은 더 단단하게 솟아 있다.


2학년 때부터는 각 선택한 사탐과목에 따라 분반 수업을 했다. 그 때 나는 윤리가 아닌 경제를 선택했고 그렇게 전혀 인연이 없을것만 같던 그와 한 반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1주일에 한 번인가 두 번 나는 그와 마주치게 되었다. 가까이에서 더 자주 마주치기 전에 언젠가 그를 복도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자다 일어나서 안경도 안쓰고 급하게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흐릿한 시야였지만 화장실에서 뛰어나오던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다. 막 자다 일어나 경황이 없었기에 나는 혹시 볼펜이라도 묻었나 싶어 쭈삣거리며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그 때처럼 자꾸 이 놈이랑 눈이 마주치기 시작했다. 가끔 시선이 마주치면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내 당황스러움은 점점 더 커졌다. 더욱이 그는 마주 온 내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photo by. Jundori



‘뭐지, 왜 쳐다보지. 아니, 왜 눈이 마주치지?’

그 생각이 바로 설렘의 시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황당하지만 그 당시 나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점차 휘말리고 있었다. 처음엔 논리적 추론을 해보려고 애썼다. 어짜피 인기 많은 놈이었으니 소심한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걸거나 친해질 리는 없었고 혼자 답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아무리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다. 우연의 일치였겠지. 그러는 동안 점차 마주치는 빈도는 늘었다. 복도나 화장실 근처에서 마주치는 건 예사였고, 수돗가 근처나 급식실에서 그리고 수업 중에도 수시로 마주쳤다. 경제 수업을 제외하곤 반이 달랐는데도 교실을 나서고 들어갈 때조차도 그를 만나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존재가 주변에서 나타나니 너무나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주칠 때마다 빤히 쳐다보는 눈빛에 감정의 소용돌이가 이는 탓에 나는 고개를 떨구었고 그가 돌아서고 나서야 멀어진 그의 등을 바라보곤 했다.


얼떨결에 시작한 첫사랑이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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