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년 (2)

마음 속에 담아둔 그 때의 일기

by 흔한여신
우연이 반복되면 사람에게 착각을 일으킨다.


당시 K와 나 사이는 친밀감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자주 있었을 뿐. 사실 둘 사이에 대화가 오간 일도 없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어떤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마주치는 눈빛에 조금씩 마음이 그에게 향하기 시작했고 곧 그 설레는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꽤 멀리 떨어져 앉은 거리에서도 나는 온통 그에게 신경이 집중되어 긴장하기 일쑤였고 곁을 스쳐 지나가는 날엔 심장이 터져 나갈듯 뛰었다. 내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건 그 애였다. 정말 풋풋한 때였다.


멀리에서 아련하게 빛났던 나의 별, 나의 첫사랑



사실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따라다니는 시선에 신경쓰느라 미처 그의 주변을 살피진 못했는데 그의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 더더욱 내 마음은 쓸모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쓸데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은 그를 향해 자라나 버렸고 그렇게 3학년, 수험생이 되서도 계속되었다. 처음엔 무관심했던 존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많은 것들에 눈길이 갔다. 하지만 나는 다가가지 못하고 늘 그의 등 너머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기억할 만한 에피소드도 없는 그런 짝사랑에 의지해 나는 상처 가득했던 시간을 보냈다. 학업성적이 좋지 못했던 터라 나는 항상 죄인이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는 태양같은 존재였다. 그와 마주치지 못한 하루는 온종일 잿빛 안개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항상 활발했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던 그와 달리 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바스라졌다.


멀리서 들리는 그의 발소리에 긴장했고 자꾸 그를 의식하는 내 자신 때문에 괴로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수돗가에서 양치를 하고 있으면 어느새 뒤에 바싹 다가와 있는 그의 그림자가 눈에 밟혔고 급식실에 길게 늘어선 줄에 틈에서유독 내 귀에만 그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곤 했다. 급식실에서 옆자리에 나란히 앉기라도 하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완연히 자태를 뽐내는 꽃이 되었다, photo by. 흔한여신



남들에게 들려줄 법한 유치하고도 간지러운 일화가 전혀 없는 실패한 짝사랑이지만, 한 동안 그 애를 많이 그리워했다. 마지막으로 그 애를 마주쳤던 건 기억하기로 학교에서 단체로 에버랜드를 갔을 때였다. 앞서 온 셔틀 버스를 탔는데 내 앞에서 문이 닫혔고 창 너머에는 그가 서 있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버스는 출발했고 그렇게 나는 그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 이별이 너무 아쉬워서 혼자 남몰래 울었던 게 기억난다.


그 이후 스무살이 되어 새로 연애를 시작했지만 그는 한 동안 내 의식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난 이야기라 이젠 설렘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어느새 나는 그 아이를 마음 속에서 떠나보냈다. 그저 하나의 기억 파편을 가진 어른이 된 것이다. 그 때 겪은 풋사랑의 추억은 부끄럽다는 이유로 해야할 할 말을 속에 담아두지 않겠다는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아 좋은 사람을 놓칠 수는 없으니깐.


안녕, 한 때 내 마음을 적셨던 못난이 내 첫사랑.


풋내가 진동하는 귀여운 마음, photo by. 흔한여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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