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is my angel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잘 모르겠어
2020년 가을, 지금처럼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멈춰버리기 전, 나는 의욕 없이 방향을 잃은 채로 방황하고 있었어. 잔뜩 움츠러든 마음으로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나 혹은 뭘 해야 할까에 대해 끝없이 고민해봤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어. 아무런 보람도 없이 뻔하게 흘러가는 일터에서의 하루는 어떠한 기쁨도 주지 못했어. 어떤 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편안한 일상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길 꿈 꾼다지만 나에겐 단조로운 삶이 마치 지옥처럼 느껴졌어.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엔 온갖 제약이 있었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내가 큰 공정에서의 일개 부품에 불과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엔 그런 부품들이 계속해서 필요하다는 사실도 작용했지. 원하지 않아도 해야할 일들이 많았던 거야.
처음부터 이 새로운 변수가 마냥 달갑지 않은 건 아니었어. 비록 코로나 때문에 내 삶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달라진 상황을 즐기려고 나름대로 노력했거든. 새로운 환경에 나를 밀어넣는다는 게 처음엔 극복해야 할 것들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어.
말도 안되게 넘치는 좋은 에너지들에 힘입어 나 역시 에너지를 넘치도록 끌어올릴 수 있었지. 잠시 코로나가 잠잠해진 틈을 타 그 동안 고민만 했던 것들을 해보기도 했어. 욕심을 잔뜩 부린 탓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낸 시간이었지. 그 동안 비슷한 계열의 색만 칠해봤는데 여러 색깔이 덧입혀 지는 게 참 새롭고 짜릿했어.
하지만 호시절은 대개 오래 지속되지가 않더라고. 곧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나는 인간관계와 일에 지쳐버리고 말았지. 하나의 팀으로 뭉쳤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니 팀워크는 산산조각이 났어. 물론 전혀 단점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전에는 서로의 장점들이 모여 시너지를 냈어. 힘든 시절을 함께 머리 맞대고 버티며 긍정적인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맺었어. 그런데 그런 과거와 달리 각자의 테두리가 명확한 사람들이 모인 거야.
그 동안 나는 다들 열심히 하니깐 거기에 발맞춰 왔는데 저마다의 속도와 저마다의 기준으로 각자도생하는 사람들 틈에서 기댈 곳이 없어져 버렸어. 여태껏 팀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주는 안락함에 기대어 왔는데 이제 ‘너는 나, 나는 너’가 아니라 ‘너는 너, 나는 나’가 되어버린 거지.
영원이란 말은 어쩌면 모래성, 잔잔한 파도 앞에 힘없이 무너져
나는 작은 일에도 금방 들뜨는 성격이라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해도 마음이 동해버릴 때가 많아. 그래서 상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잘 해주든 나는 나의 마음을 최대한 많이 표현하려고 했어. 그래서 상대에게 서운했던 순간들에도 말 한마디 못 꺼내보고 속으로 삼켰어. 내가 괜찮지 않은 것보다 상대가 괜찮은 게 더 중요했거든.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아닌데 참 어리석었던것 같아. 물론 모든 게 정확히 기브앤테이크가 맞아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나는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가 심했던 거야. 그렇게 나의 감정 세계를 떠받들고 있던 중심축이 흔들리자 내 내면의 작은 성 또한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어.
나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야 말았어.
전엔 그래도 꽤 치열하게 살았거든.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내가 해낸 것들에 대해 만족하고 또 반성하면서 조금씩 성장했던것 같아. 그런데 새로운 현실에선 직장에선 어떤 목표와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는데다가 당장 반복되는 일상이 미치도록 지겨워졌어. 게다가 사람이 좋아서 매달린 인간관계였는데 스스로가 단호하지 못해서 결국 상처를 많이 받고야 말았어. 하지만 아무 것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했어.
마음에도 방학이 필요해
웃음의 크기와 우울함의 크기는 결국 비슷해.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게 인생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거든. 우울함과 무기력함에 사로잡혀 잔뜩 위축되어 있는데 겉으로는 티가 잘 나질 않았는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고. 각자의 삶이 힘들고 바쁘다보니 지나칠 법도 하겠지. 한 사람의 명암(明暗) 중에 그의 빛나는 모습은 누구든 알아보는 법이지만 그 사람의 그림자를 보는 건 쉽지 않아. 누군가에게서 배어 나오는 슬픔을 알아차리려면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거든.
사람들은 누군가의 변화에 대해 가볍게 단정짓고 말더라고. 말도 많고 웃음도 많아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조차도 버거워했지. 결국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어. 그 때의 나는 방황하느라 외로운 마음을 감추는 게 힘들었는데 역시 사회생활은 매정해. 전에 기계처럼 착실히 일하던 모습은 이미 뇌리에서 지워졌는지 '요즘 편해졌나보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어.
물론 여느 사람들처럼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을 잘 알기에 내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 때의 나는 버틸 정신력이 안 됐었어. 그렇다고 내가 먼저 힘든 티를 내기엔 너무 아마추어같잖아. 나는 프로여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