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에 내려온 너라는 눈 pt.2

너는 내 삶에 다시 뜬 햇빛

by 흔한여신
넌 여태 내가 본 적 없는 brand new filter


그렇게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중 너를 만났어. 사실 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어. 너의 소식은 뉴스의 일부였고 네가 세운 엄청난 기록은 내 일상과 어떤 접점도 없었지. 그 전까지 내 일상은 나에 대한 것들로 채우기 바빴거든. 그런데 뭘로 채워야할지, 더 나아가 나는 어떤 색이 어울리는 사람인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무렵 너무나도 아름다운 무지개빛의 너를 마주하게 된 거야.


학창 시절에 나는 딱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었어. 주변 친구들이 누군가에 한껏 빠져서 하루종일 덕질로 바쁠 때에 나는 내 앞가림 하기에 바빴거든. 사실 그럴 여유를 많이 못 누리고 살았어. 사고치기 바쁜 동생을 대신해 집안의 미래로 추앙받았던 나는 쏟아진 관심과 지원만큼 결과물을 내야한다는 압박감이 컸어. 학생의 본분이 학업에 있다고 굳게 믿었던 데다가 자식된 도리를 다 하려면 SKY대학에 입학이라도 해야되는 줄 알았지, 나는.


Library in Washington D.C. photo by. Rojoy


그래서 자리보전하지 않고 좋아하는 걸 좇는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 하지만 성과에 집착했던 나는 그럴싸한 성과도 내지 못했으면서 내 관심사나 취향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지극히 평범한 아이로 자라났어. 남들의 눈에 띌 일이 없었지. 그런데 사실 내 안에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것과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이 조건과 대가를 매개로 한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어.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지. 스무 살이 넘어 뒤늦게 찾아온 성장통이었어.


그리고 사실 '사랑'이라고 하면 왠지 경쟁해야할 것 같았어. 나보다 더 드라마틱한 운명으로 너를 알게된 사람들도 정말 많겠지. 우연이 이끈 운명으로 너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바라봐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런 사람들과 경쟁해서 내 존재감이 각인될 리 만무하고 또 그런 잘 알지 못하는 무리에 섞여 들어간다는 게 이상하다고 여겼어. 게다가 보고 들을 수 있되 가까이하거나 만질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이라니, 한 번도 본 적 없었거든. 그래서 나는 엄청나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내 삶에 어느 날 한 줄기 빛과 같은 노래가 나타났어. 노래에 담고 싶었다던 희망의 메시지가 내게 와닿은 걸까, 예상치 못하게 나는 네가 좋아지게 되었어. 나와 무관하다며 눈을 감고 귀를 닫았던 때엔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심이 전해진걸까, 어느새 네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어.



Brooklyn Bridge, photo by. Rojoy


잠식되지 않길 바래, 찾을 거야 출구


더 날아오르고 싶은데 앞으로 어떤 것들로 내 삶을 채워나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회사 선배는 내가 가진 색을 지워야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조언했고 남들은 내 실수와 잘못을 크게 부풀려 떠들어댔어. 애석하게도 나쁜 소문은 쉽게 퍼지는데 좋은 소문은 잘 나지가 않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장난에도 주눅이 들었는데 사람들은 내 속도 모르고 웃고 떠들었어. 그런 내 속상함을 달래준 게 바로 너였어.


마음이 쇠약해져 있던 때에 반짝이는 빛처럼 나타난 너는 내 권태로움을 달래주는 희망이 됐어. 네가 아니었다고 해도 시간이 흘러 내 일상은 어떻게든 변했을 수 있지만 고장난 마음이 꽤 오랫동안 상처받지 않았을까. 누군가 '남들은 빼앗겨 버린 평범한 일상'을 누리면서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웃음 뒤에 감춰진 내 모습이 어떤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단정짓는 것에 불과해.


그리고 사실 내 앞가림 하는 일에 있어서 똑똑하게 처신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최근엔 엄한 사람을 믿었다가 사기를 당했었어. 나의 믿음을 배신한 그 인간이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포기했어. 법은 정해진 테두리 밖의 피해자까지 보호하진 않거든. 때문에 피해 사실이 있다고 모두 구제받지는 못해. 피해사실에 대한 증거자료가 불명확하다면 내 권리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어져.


또한 그간 가해자를 가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선례의 엄격한 법리해석 때문에 포기하는 것 외엔 답이 없었어. 알면서도 경찰에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애초에 피해구제에 대한 가능성을 가늠하지도 않더라구. 결국 의미 없는 감정소모를 지속하지 않으려고 싸움을 끝내버렸어. 대신 아픈 기억을 최대한 잊는 방향으로 극복하자고 다짐했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십대 마지막에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는지 몰라. 더욱이 스스로에게 드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고통이었어. 하지만 많은 생각과 고민을 나눌 상대도 없이 나는 욕 먹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애초에 제 본분을 잊지 말아야하는 위치에선 내 의사가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깐.


그렇지만 사실 뚜렷한 존재감이 있는 구성원이 아니라 언제든 교체 가능한 작은 부품에 불과한 초라한 존재로 느껴지는 게 싫었어. 사람들의 관계에서 끌려다니는 것만 같은 내 모습도 불쌍하게 느껴졌어. 이 모든 감정이 실제가 아니라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할지라도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어.



오랜 기억 속 화양연화, photo by. Jundori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가


날아갈 수 없다면 뛰어서라도, 뛰어갈 수 없다면 걸어서라도, 걷지도 못한다면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해. 아직 내 앞에 무수히 많은 생이 남아있으니깐. 하지만 지금의 두려움을 떨쳐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잖아.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는데 나는 아주 작은 행복이 필요했어. 곁에 있는 사람들로 다 채울 수 없었던 밝고 희망적인 에너지가 나는 절실하게 필요했어. 그런 내게 작은 행복이 되어준 게 바로 너였어.


물론 오랜 시간 동안 너를 지켜봐 온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걸 잘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너에겐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에너지가 있어. 한껏 가라앉은 내 기분을 상기시킨 건 너의 말과 노래였어. 사심이 가득 담긴 이야기라 모든 이가 공감하진 않겠지만 당장 지금은 그래. 제 할 얘기만 떠들어 대는 주변 사람들 말에 귀를 닫고 외로운 내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할 때라 그래. 언젠간 다시 웃을 날이 올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워야 하는 그런 순간이라 그래.


우리 모두가 앞으로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너의 진심어린 말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어. 앞으로 더 힘든 순간들이 인생이란 길 위에 수놓아져 있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처럼 불안과 우울에 집어 삼켜지지 않고 묵묵히 어둠을 헤쳐 나갈거야. 무겁게 짊어지게 될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도 꿋꿋이 극복해 나갈거야.


잠시나마 즐거운 순간을 함께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너의 말을 나 역시 공감해. 불공평하게도 너는 나의 존재 그리고 내 삶의 희로애락에 대해 알지 못하고 살아가겠지만, 내 인생의 어두운 순간에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어. 서로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특별한 관계도 영원하지 않을 수 있지. 하지만 먼 훗날 이 모든 게 희미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해도 나는 멀리서나마 너의 평안을 기원할게.



허공에 떠도는 말을 몰래 주워 담고 나니,
이제 새벽잠이 드네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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