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공무원시험 강사들은 종종 수업 중에 공무원 관상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면서 늘 궁금했다. 내가 과연 '붙을 상'(?)인가. 그런 상이 뭔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거울을 쳐다봐도 그리고 남들 얼굴을 요리조리 살펴봐도 소위 '공무원상'은 없는것 같다. 둘러보면 이목구비가 자기 주장이 강한 개성있는 얼굴도 온순한 얼굴도 형사같은 얼굴상도 그리고 옆집 아저씨같은 관상도 있다. 한 마디로 구별할 의미없는 얘기다. 공무원이라고 써붙이고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내 직업을 얼굴에서 유추하는 사람은 없다.
긴 수험생활에 찍은 쉼표
2017년 가을. 공시생 반열에 들어선지 벌써 2년이 조금 넘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응시했던 9급 시험마저 불합격한 상황. 15년부터 17년까지 2년 동안 외무영사직 직렬에 올인해 준비했지만 노력이 조금 부족했던 탓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지금에 와 생각하니 좀더 준비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당시에 나는 자신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급했다. 어린 나이에 수험생활을 시작한 게 아니라 해를 더 넘겼다간 다른 데로 방향을 틀 기회조차 없어질 위기였다. 무엇보다도 불량품마냥 쓸모없는 부품 취급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주변에는 취업해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는 지인들과 달리 제 밥벌이를 못하고 부모에 기대는 상황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소득활동이 전무한 가운데 다달이 드는 수험비용은 가계경제에 부담이 되었고 연이은 불합격 소식은 부모님께도 심적 부담이었다. 더욱이 아버지는 목 디스크로 인해 사지가 저리는 고통을 겪고 있어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부모님의 건강 문제는 안 그래도 예민했던 나에게 큰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더 필요한 문제인지 여부에 대해 쉽게 확신을 갖지 못했다. 되레 공무원 시험이 내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생겼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고독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생활에 질려버렸던 나는 결국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노량진에서 도망쳐 나왔다.
우선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갔다. 대학은 이미 졸업했으니 아무런 소속 없는 백수 신세. 남들처럼 스펙을 쌓고 자기소개서를 가다듬고 하는 취업준비와 멀어진지 오래라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백수의 운명을 맞이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급한대로 하반기 공채를 기다리기보다 차년도 상반기 공채를 준비할 요량으로 알바자리를 물색했다. 무작정 수입없이 기약없는 면접통보를 기다리는 게 더 괴로울듯하여 알바몬을 통해 사무보조 알바에 지원했다. 알바자리는 생각보다 찾기 수월했다. 취준생들이 대개 긴 시간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찾다보니 블루오션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수험생 티를 벗기 위해 나는 다시 일터에 나왔다.
고통에서 도망쳐 나와 도착한 파라다이스
당시 고용부에서는 청년친화강소기업을 선정하는 사업을 외부에 위탁해 진행했고 그 위탁한 기관이 중소기업중앙회였다. 중앙회에서는 사업의 대상 기업을 선정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인력을 기용해 사무국을 운영했고 그 기간제 근로자 채용에 내가 선발되었다.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은 비슷한 나이 또래도 있었지만 경력 단절된 여성들 즉 중년 여성들이 절반 정도 됐다. 사업 자체가 공공성을 띄고 있다고 생각해 경단녀들을 채용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수험생 신분을 벗어 던지고 9월부터 12월까지 약 5개월간 사무실에 출근하게 됐다. 임시로 근무하는 처지였지만 ‘여의도 피플’이 된 것마냥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