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공시생 (7/7)

series: 합격의 순간

by 흔한여신

여차저차 계약직으로서 짧은 소임을 마치고 나는 고민 끝에 다시 공시생 생활로 돌아갔다. 사실 사기업 공채 준비를 할 생각도 있었고 자격시험을 준비하려고 알아보기도 했지만 그 동안 공부했던 게 아까워서라도 돌아서기가 어려웠다. 단번에 포기하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몇 개월의 회사생활로 그 동안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를 얼마간 충족한 덕분에 공부할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이라는 다짐과 더불어 공시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참 시리다 생각했는데 포근한 겨울이었다, photo by. Rojoy


이번엔 노량진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독서실에 자리를 잡았다. 수업을 직접 듣는 것도 아닌데 멀리 오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집에서 대략 15분 거리에 있는 독서실에서 마지막이 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공시에 뛰어든지 2년 만에 처음 공부한 과목이 바로 '행정법'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일반 행정직렬을 준비했던 게 아니라 낯선 과목이었는데 3개월 뒤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생으로 모르는 내용을 공부하려니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없는 터라 이해를 하기보단 그냥 머릿 속에 쑤셔 넣었다. 다행히 이전에 다른 기본 과목들을 충실히 공부해놓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복습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짧았고 외워야 할 분량은 많았다. 마음이 점차 심란해져갔다.


어느 날은 도저히 행정법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공부진도가 예정한 분량에 한참 못 미쳤다. 시험을 두 달 여 남겨둔 상태였다. 답답한 마음에 그만 울컥해버렸다. 조용히 해야하는 공간에서 차마 소리를 밖으로 내지 못하고 서러움에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울면서도 활자를 보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꾸역꾸역 문제를 풀고 오답노트를 적으며 눈물을 삼켰다. 그 때에는 나이가 더 들면 더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내 암기력이 이 정도밖에 안됐는가 하는 답답함 등 이루말할 수 없이 복잡한 심경이었다. 마지막 시험이란 생각에 절박함이 더해져 있었고 남의 소음에 신경쓸 겨를도 없이 책만 쳐다보기 바빴다.


그렇게 마음이 다시 타들어갈 무렵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에 입맛이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사약맛 커피는 커피가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주로 선택하는 메뉴는 달달한 것들. 최애 메뉴는 '바닐라 라떼'였다. 예전엔 달콤한 시럽 맛으로 카페인의 쓴맛을 덮어야 마실 수 있는 음료였는데 마음이 심란해서였을까, 갑자기 스타벅스에서 우연히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맛있는 것이다. 신기했다. 나이가 들어서 입맛이 변한 탓인지 내 상황이 씁쓸하게 느껴져서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최애 메뉴가 바뀌었다.



결전의 날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불안을 헤쳐왔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취준생 혹은 수험생이 그러하듯 나 역시 내가 준비됐는지 여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고 물론 혹자가 얘기했듯 준비가 덜 되어 있기 때문에 더 긴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리고 절박했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손꼽아 기다렸고 걱정 속에 시험을 마쳤다. 공부한 것 만큼만 다 쏟아내고 오면 좋으련만 사실 모든 사람이 공부한 양에 비례한 점수를 받는 게 아니다. 또 갈수록 늘어가는 경쟁률 대비해서 문제 난도도 높아져갔기에 변형된 출제기준에 들어맞기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운이 따르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도 지난 동안 성실하게 수험에 임하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배려했던 덕분이었을까, 드디어 운 때를 만났다. 다행히 나는 18년도 시험에 운이 따랐고 합격을 했다. 비로소 약 2년 6개월 간의 장정에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공무원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