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막걸릿집 주인장의 영업철학

by 지성파파

오래된 동네의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에서 음식을 먹는 맛은 깨끗한 도심의 식당에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제공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노포란? 맛있는 음식의 맛과 향이 배어있는 곳. 장인정신을 가지고 대를 이어 손님을 맞는 곳. 세련되지는 않지만 정감이 묻어나는 곳. 주인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곳. 단골들이 친구와 가족을 이끌고 대를 이어 단골이 되는 곳. 시간의 흐름이 공간과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는 곳. 주인의 손때 묻은 조리도구가 단골손님을 기다리는 곳. 이런 맛집 노포의 존재는 동네의 자랑이면서도 주민들의 소소한 행복의 원천이 된다.


비 내리는 날이면 이 집이 생각난다.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라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집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이 막걸리집은 대로변에서 살짝 들어간 이면도로에 소담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주점의 벽면에는 오래된 시간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자작시와 수줍은 사랑고백이 흥을 돋운다. 원탁형의 탁자에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다. 닳고 닳은 미닫이 문과 기름칠이 잘되어있는 무쇠 철판이 잘 달궈져 있는 곳. 누군가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추천하고 싶은 곳. 시중에서 판매하는 막걸리는 똑같은 맛이지만 이 집만의 안주거리와 주인장의 철학이 함께 어우러져 특별한 맛을 낸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단골집이라 부른다.


그래도 과음은 안된다. 술자리로 인한 행복보다 더 중요한 행복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팔기보다는 제대로 팔기

개인적으로 전 자체가 두꺼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얇고 바삭하게 익힌 것을 선호한다. 부침개를 이런 방식으로 부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보통의 막걸릿집은 전 자체가 두껍고 기름기가 많아 퍼석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집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제대로 음식을 만들어 낸다.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얇고 바삭한 상태의 부침개를 먹을 수 있다. 손님이 많을 때면 적당히 만들어 내놔도 될 법도 한데, 사장님은 누가 시키든지 정성과 시간을 들여 전을 부친다. 단골들도 주문한 순서대로 안주감을 기다려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대충 많이 팔기보다 제대로 정성을 들여 팔기가 사장님의 소신이다. 그래서 안주가 조금 늦게 나오더라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 김치전 한쪽을 먹으며 막걸리를 한 모금 하면 그야말로 "입에 녹는다"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어쩌다 손님도, 단골손님도 환대하기

이 집 사장님이 모든 손님들에게 친절한 것은 확실하다. 가만히 앉아 바라보면 손님 접대의 정성이 다 보인다. 처음 오거나 어쩌다 들리는 손님에게는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기운이 역력하다. 혹여라도 낯선 분위기가 일행이나 술맛에 방해될까 봐. 정기적으로 자주 들리는 단골들에게는 특별한 환대를 한다. 오며 가며 단골의 안부를 묻고 술이 불콰한지 자주 안색을 살핀다. 안주가 부족해 보일 때면 주문을 하지 않았어도 슬쩍 다른 안주를 내어주시곤 한다. 모둠전을 시키면 좀 더 넉넉하게 해서 다른 테이블에도 맛보기를 보여주시곤 한다. 주위의 다른 테이블에도 주로 낯익은 단골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마도 우리처럼 어쩌다 손님이었다가 단골손님이 된 경우일 것이다.


단체손님보다는 소수의 손님 선호하기

사장님 입장에서는 단체손님을 맞이하는 게 매출 측면에서 바람직할 것이나, 이 집은 오히려 두세 명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을 반긴다. 단체손님들은 그들끼리 대화하고 필요 이상의 소음을 불러일으켜서 다른 손님들의 대화에 방해가 돼서 그렇다고 한다. 사장님의 속내를 들어보니 매출 자체보다는 손님 개개인의 만족도가 더 신경 쓰인다고 한다. 좁은 공간에 단체손님이 머무르게 되면 공간 역학상 전체 분위기가 그들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사장님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매출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는 세심함이란. 아무래도 단체손님과는 주인과의 소통의 기회도 적을 것이다. 막걸릿집 특유의 정서상 주인장과 손님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손님 입장에서는 주인장이 세세하게 기억해주고 신경 써주는 집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정에 이끌려 단골이 되고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 가족이 먹는 그대로 조리하기

이 집은 구조상 전을 부치는 공간과 재료를 다듬거나 다른 요리를 하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다. 그렇다 보니 주문을 받고 안주감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눈에 띈다. 말 그대로 오픈 키친이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위생문제에 관한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부침개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원재료의 비율과 밀가루 반죽의 비율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부추전이나 김치전에 들어가는 부추나 김치의 양이 적거나 질이 낮다면 완성품에서 외형상 문제가 금방 드러난다. 지금까지 먹어본 바에 의하면, 이 집의 부침개는 아주 적당한 정도의 질감과 맛을 낸다. 원재료를 충분히 넣고 넓고 크게 부침개를 만들어 피자처럼 먹기 좋게 잘라준다. 재료를 손질만 해놓고 주문을 하는 대로 직접 반죽을 하다 보니 조리하는 장면이 슬로비디오처럼 그려진다. 8천 원짜리 김치찌개를 라면과 함께 시키면 세명이 먹어도 충분할 정도로 양이 넉넉하다. 왜 이렇게 많이 주시냐고 물었더니, "내 집 식구들이 먹는 거랑 똑같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맛있게나 드시라"고 말하시는 사장님의 뒷모습이 꼭 엄마나 누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는 가장 훌륭한 사업 파트너

이 집은 사장님과 초등학교 동창생인 친구 두 분이서 함께 일한다. 처음에는 서로가 열심히여서 누가 사장님인지 몰랐지만 결국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친구인 두 분이 생업을 같이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친구랑 저렇게 함께 나이 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장님은 말씀보다는 음식 준비와 부침개를 직접 담당하고, 친구분은 음식 준비와 서빙을 주로 했다. 술은 손님들이 직접 알아서 가져다 먹는다. 친구분은 흥이 많으신 분이라 유행가 가사를 자주 흥얼거린다. 서빙 도중 손님들의 대화에 참여도 하는 활동적인 스타일이어서 다소 정적인 사장님의 캐릭터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어찌 되었던 친구 두 분이 사이좋게 지내면서 밥벌이하는 모습은 정겨운 한 장의 사진이다. 우리팀이 가는날은 두분과도 이런저런 대화를 하곤 한다.

단골을 친구나 동생처럼 대하기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대접은 손님을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다. 왕에게는 실제적인 정감보다 가식적인 예절이 먼저여서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부담은 적고 정감 어린 접대가 가능할 것이다. 주인이 손님에게 매너를 갖추면서도 편하게 대하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다. 손님 입장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주인장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환대다. 가만히 살펴보면, 동네 주민들이거나 연령대가 비슷한 분들에게는 친구처럼 여유롭게 대함을 볼 수 있다. 어쩌다 손님이거나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면 오히려 살가운 동생처럼 대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프로의 서비스를 배운다. 우리팀은 한참 어린 동생의 입장이다보니 공짜 안주를 더 얻어먹어도 마음이 편하다.


기본 안주에 충실하기

다른 막걸릿집에서는 메뉴판에 있어야 할 두부나 김치가 기본 안주로 제공된다. 김치는 아삭하게 잘 익어있고 두부는 신선하다. 두 가지 기본 안주로도 막걸리 한 병이 거뜬하게 마실수 있다. 이 안주들이 비어갈 때면 어김없이 미리 채워주는 센스도 기본이다. 막걸리 안주 중 가장 선호하는 두부와 김치를 기본 서비스 안주로 내놓고 있으니, 다른 안주의 양과 질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할 것이 없다. 부침개를 찍어먹을 수 있는 양념장도 청양고추와 양파에 초간장이 버무려져서 부침개의 느끼함을 완화시켜준다.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에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한다. 신선한 오이나 당근을 수시로 내어주시곤 해서 기본 안주만으로도 넉넉하지만. 비 내리고 배고픈 저녁이면 개인당 부침개 한 장에 김치찌개 한 그릇 정도는 채워줘야 배고픔이 가시지 않겠는가. 물론 막걸리가 들어갈 배는 따로.... 참고로 이렇게 먹다 보면 다음날 숙취는 거의 없다.(막걸리에 취하면 부모도 몰라본다는 무서운 전설이 있다)



미닫이 문과 유리창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금요일 저녁 8시 30분. 가을이 깊어지고 있던 탓에 골목 안쪽에서 즐거운 소란이 대로변까지 넘어온다. 뒷골목의 막걸릿집은 여전히 단골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일찍부터 술자리를 했던 누군가가 계속 "싸장~님, 막걸리 한병 더"를 외치고 있지만, 사장님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그런 단골의 성화에 이골이 나셨는지 사장님은 조용히 다가와서 단골의 등을 정겹게 떠민다.

"아이고 김 선생님, 다음에 또 오셔, 건강하셔야 또 마실 거 아녀!"

두어 번 손사래를 치던 그 단골은 사장님의 염려를 받아들였는지, 일행과 함께 술자리를 정리하고 빗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정겨운 광경도 손님들의 쿨한 절제도 이 집과 사장님이 주는 아주 특별한 안주였다. 라디오에서는 심수봉의 노래 "백만 송이 장미"가 구슬프게 흘러나온다. 다음 노래는 최백호의 노래가 흘러나올 차례인가.


그래 술맛 나는 날이다. 친구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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