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성파파 Sep 17. 2019

미성숙의 시대를 엿보다 – 오디션 전성시대

#1.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미생(未生)이라는 드라마를 생각해본다.


그 불쾌한 기억은 오래도록 조직이나 사회에 대한 개인의 두려움을 내면화시킨다. 이러한 두려움의 내면화는 조직이나 국가에서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내면화된 공포의 조각들은 개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행동을 통제한다. 어렵게 들어간 조직에서 성장과정이 성장통으로 그치지 않고, 출근과 퇴근길이 가볍지 않게 여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각종 오디션과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 프로그램이 대세다. 인기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다이어트의 열풍과 정반대 측면에서 온갖 먹거리가 유명인들의 입속에서 분해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침을 흘리게 만든다.


먹방 프로를 보다 보면 다양한 먹거리에 대한 눈 호강과 저렇게 먹어도 되나 하면서 오히려 식욕이 절제되는 장점도 있다. 단점은 스마트폰의 배달앱이 지나치게 활성화된다는 거다. 허릿살은 나잇살이고, 뱃살은 인격이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는 불편함도 있기는 하지만.   

  

  각종의 장기와 노래를 주축으로 아마추어들이 ‘오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실력을 전문가들 앞에서 뽐내고 프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받는다.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생역전이나 대박을 친 여러 명이 있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오디션 관련 프로를 보다 보면, 참가자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큰 박수를 치고 싶으나, 과연 이러한 프로그램이 가지는 장점(이점)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오히려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폐해는 어떤 것인가를 고민해본다.  

         



#2.

  오디션의 순기능은 재능을 가진 일반인이 스타로 탄생할 가능성을 발견한다는데 있다.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 중의 하나가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유명 엔터테인먼트사의 연습생으로 들어가 그들이 말하는 데뷔 무대에 서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그런 시간들을 축약시켜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선택받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다시 준비해야 하고 후일을 기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받지 못한 다수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문제는 이러한 탈락이 누군가에게는 더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채찍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멀었어, 나는 재능이 부족해서 죽어라 노력해야 돼’라는 식의 자기 합리화를 의식화하거나 ‘나는 안 돼, 나는 무기력한 존재야’라는 식으로 패배주의를 내면화시키거나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미생의 시대, 미완의 시대, 인턴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미생이니 미완이니 인턴이라 부르는가. 이들을 심판하고 평가의 기준을 제공하는 이들의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 것인가. 그 심판자들이 가진 성숙과 미성숙의 잣대는 정당한가.


누군가의 성공과 실패, 완성과 미생, 정규직과 인턴의 경계를 나눌 능력을 그들이 갖추었는가. 심각하게 의문을 가져볼 일이다.      


  우리는 왜 그 오디션이나 심판장이 가지는 승부나 선택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그 이면에 감추어진 위와 같은 의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승자독식이나 패자부활전이 없는(혹은 제한된) 현실의 리얼리티가 극명하게 드러난 정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러한 의문에 합리적인 질문을 던지지 못할 때 우리는 게임의 룰로부터 소외된다. 특정인들이 만든 규칙 속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오디션 전성시대가 가지는 문제점은 이런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다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느끼는 패배감은 자신의 능력 부족이나 준비 부족이라는 미성숙으로 내면화된다. '아직은 준비부족'이라는 낙인을 받은 개인들은 그것을 '노력'이라는 마법으로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에 힘쓸수 밖에 없다.


  결국 각 개인들은 잘못 설계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나 질문은 할 수 없고, 오히려 게임의 룰에 순응해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만 남는다. 그러기에 스스로를 아직은 더 배워야 하는 학생이고 더 노력해야 하는 미성숙한 개체로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미생의 개체로 낙인 된 개인들은 죽어라 노력하여야 하고 이들에게 남는 것은 경쟁의 과잉이다. 경쟁 과잉이 가져온 가장 큰 문제점은 그 과정이 공정한지, 심판자가 정당한지, 이런 사회 시스템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경쟁을 뚫고 나가는 '경주마의 본능'만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디션 현장에 숨겨진 진실이 불편하다.   

   

  특히 계속해서 아이들의 의사에 관계없이 오디션 현장이나 경쟁의 수레바퀴에 밀어 넣는 열혈 부모는 어떨까.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자식의 정신적인 심리적인 문제를 살펴보고 있을까. 아이들이 그냥 견디는 건지 혹은 버티는 건지. 아니면 마지못해 따라가는 건지.  


그 수레바퀴 아래에 누가 쓰러져 있는지(혹은 쓰러져있을지) 살펴보아야 함에도 경쟁이 만들어놓은 가속도 앞에서는 오직 골인지점만 볼수밖에 없다.  

 

  누가 되었든지, 오디션에서 탈락자는 능력 부족의 낙인과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살벌한 경쟁의 장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이나 그 시스템에 대한 비판능력의 결여는 문제 삼을 수도 없다. 그들끼리의 연대의 문제는 먼 나라의 얘기에 볼과하다.


 오디션의 영광이 화려해질수록 그 이면의 어둠은 짙어져 갈 것이다.   

        



#3.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필수 불가결하다. 경쟁 없는 사회나 개인은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을 통해 성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실패한 경우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패자부활전이 인정되지 않은 게임은 위험하고 도발적이다. 승자독식이 인정되고 그 유혹은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오디션이나 재능 선발의 기회가 공평하게 제공되고, 그 심판자들이 정당한 능력과 기준을 갖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 오디션의 장에서 탈락하더라도 재도전의 기회가 제공되고 자신이 미생이라는 내면화가 요구되지 않는 게임의 룰도 필요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오디션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부여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야만 개인들이 오디션과 과잉경쟁을 거부하거나 불참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경쟁은 하되 패자부활전이 허용되는 사회, 각자의 능력에 맞는 노력과 선택이 가능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오늘 밤에도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0대와 20대가 모여 열띤 경합을 벌이고 있다.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와 용기를 주고 싶다. 먼저 살아가고 있는 선배로서.     


“너희들은 결코 미생이 아니야. 계속 성장해가는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야”  

   

“먼저,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봐”     

매거진의 이전글 단골 막걸릿집 주인장의 영업철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