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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Dec 30. 2019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문장의 힘

밥은 가장 근본적이면서 숭고하다. 밥은 그 자체가 목적이면서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다. 우리의 생존은 밥에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난다. 모든 인간관계  또한 밥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도 없다.  스스로는 감정을 가지지 않으나 밥을 둘러싼 대부분의 상황은 뜨끈한 감정을 지닌다.


흔히들 말하는 "밥은 먹고 다니냐"는 문장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진심으로 상대방의 끼니를 걱정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것이다.


둘째는 첫 번째보다 더 진심으로 상대방의 언행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인터넷 포털의 댓글에서 많이 보인다. 어쩌면 이 의미로 밥이 사용될 때 가장 심한 욕설보다 더 심각한 비난의 뜻이 담겨 있다. 지상 최대의 욕.... 왜 이딴 식으로 사느냐며 상대방의 삶의 동기를 다시 묻고 혐오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밥이나 생선매운탕 한그릇에는 인간의 체온이 닮겨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주로 첫 번째 의미로 "밥"을 말한다. 최근에 인기 절정의 김수미 씨가 등장하는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김수미 씨가 운영하는 국밥집에서 서로 얘기를 나누는 리얼  다큐다. 세 아이를 키우며 넷째 아이를 임신한 다둥이 엄마가 등장한 회차에서의 얘기다.


김수미: 왜 혼자 왔어? 애들이랑 안 오고.

다둥이 엄마: 지금 넷째를 가져서... 입덧이 심하고 해서....

김수미: (젊어 보이는 다둥이 엄마에게) 큰애가 몇 살이야?

다둥이 엄마: 23살이에요....

김수미: (17세에 결혼에서 현재 39살인 다둥이 엄마에게) ㅎㅎㅎ.. (조금 빨리) 연애했구나.....

다둥이 엄마: (수줍게 웃으며) 예....

김수미: 그럼, 남편은?

다둥이 엄마:............ 사별했어요...........

김수미:..............................................


한 동네서 나고 자란 부부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고 살아오다가, 남편이 올해 40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그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가 생략되고 서러운 눈물과 친정엄마 같은 위로와 다시 뜨거운 눈물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김수미 씨는 다둥이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슬픔을 다독였다. 입덧 때문에 잘 못 먹는 다둥이 엄마를 위해 새로 된장찌개를 끓여주며 친정엄마의 사랑의 눈길을 보내주었다. 타인들에게 함부로 주지 않았던 개인명함을 내밀며 꼭 다시 연락하라며 급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다둥이 엄마를 보듬어주었다.


다른 회차에서는 암투병 중인 영화배우 김정태 씨가 등장했다. 간질환에 대한 가족력 때문에 간암 투병 중인 김정태 씨는 영화 속에서 모자지간이었던 김수미 씨를 만나기 위해 국밥집을 방문했다. 김수미 씨는 상심이 컸을 김정태 씨를 따뜻하게 반겨주고, 밥은 먹고 나니냐며 회한과 그리움이 담긴 대화를 나눴다. 김수미 씨의 위로에 김정태 씨는 돌아가신 친어머니에게 안긴 것처럼 크게 오열했다. 김정태 씨는 사무친 마음에 서럽게 울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속절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있었다.


그렇다. 누군가를 걱정해주고 그리워해 주는 이들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진심이 담긴 사랑과 위안의 감정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울컥하거나 흐르는 눈물은 그냥 덤이다. 어쩌면 "요새 행복해?(꼭 행복해야 돼)"라고 묻는 것과 같은 온도와 농도의 문장이 아닐까?




가끔씩은 "밥은 먹고 다니냐"를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하고 싶은 부류들이 있다.


정치혼란의 주된 원인을 제공하는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공무원들(판검사들 포함), 온갖 갑질을 일삼는 조직과 그 무리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고 횡포를 부리는 이기주의자들, 인터넷에 악성 댓글로 하루를 보내는 악플러들, 혹세무민 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이비 종교인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고 조롱하는 악한 영혼들.


이러한 부류들에게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묻는 것은 "당신들은 밥 먹을 가치도 자격도 없다"말을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밥값도 제대로 못하는 ×× 같은 인간들"이라는 말을 최대한 부드럽게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어느 날 시골에 계신 어머니랑 안부전화 겸 이런저런 통화를 하다가 끝무렵에 던지는 어머니의 한마디. 


"밥은 잘 먹고 다니고 있지?"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아들에게 두 번째 의미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리라.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하는 아들과 며느리가 진심으로 걱정되셔서 하시는 말씀일 것이다. 어떤 위안과 걱정이 담긴 말보다 더 함축적인 한 문장. 어머니 말씀을 들으며 문득 김수미 씨의 국밥집에서 보았던 눈물과 위로의 장면이 떠올랐다. 순간 눈빛이 흐릿해지며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밥"은 언제나 따뜻하고 사랑이 담긴 온정의 단어여야 한다는 것이다. 밥이 들어간 문장 또한 사람의 체온과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어찌 되었든 비난과 경멸의 뜻을 밥에 담는 것은 밥 자체를 모독하는 것이다.


새해에는 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에게 "밥은 잘 먹고 다니냐? 오늘 저녁밥 한번 먹자!"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보면 어떨까? 그것도 먼 훗날로 미루지 말고 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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