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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Nov 25. 2019

이제부터 당신의 인생은 청신호입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대중교통도 마찬가지) 운 좋게도 계속 녹색신호를 받으며 직진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 누군가는 "아싸! 청신호가 켜졌다"라고 환호하며 말한다. 원하는 목적지까지 차량정체와 붉은 신호등 때문에 정지했다가 가다가를 반복하는 것보다는 시간이나 감정 문제에 있어서도 훨씬 바람직하다. 정된 청신호 상황에서는 과속할 이유도 없고 신호위반의 위험도 없이 규정속도에 따라 움직여도 되는 여유까지 가져다준다. 대통령 같은 VIP 의전 행렬도 아닌데 연달아 녹색 신호등만 켜진다는 것은 큰 횡재다.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그나마 계획대로 잘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계속 붉은 신호등이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상황이 반복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의 노력이나 행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인생을 계획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삶은 그러한가?


부침이나 우여곡절이 없는 인생은 거의 없다. 마치 예외 없는 법칙이 없는 것처럼. 마냥 녹색 신호등만 켜지는 인생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계속해서 국가고시떨어졌던 친한 후배가 있었다.

 

집이 유복하지도 않았고 부모님도 퇴직하시고 연로하셔서 경제적인 사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모의 등골을 빼먹고, 아버지 퇴직금을 갉아먹고 산다는 얘기를 다른 가족에게서 듣고 살아왔다.

일치감치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이 후배는 오직 고시에만 매달리고 집착했다. 고시낭인이나 인생 실패자라는 말도 가끔씩 들었다.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연락을 끊었고, 자존감과 자신감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었다. 가끔씩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날개 꺾인 청춘의 모습 그것이었다. 돈잔치 로스쿨은 다른 동네의 남의 얘기였다. 가족들은 은근히 눈높이를 낮춰서 공무원 시험이라도 치르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어느 날 진지하게 후배의 공부방법론을 묻고 들어 보았다.(통상 초짜가 아닌 이상 묵시적으로 공부방법론은 잘 얘기하지 않는다) 후배의 무엇이 문제인가? 공부방법(혹은 공부에 대한 태도)인지, 아니면 생활태도인지를.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 객관식으로만 치러지는 1차 시험이 문제였다. 여러 과목을 하루에 보는 1차 시험은 객관식에 적합한 수험방법이 필요한데, 후배는 그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계속되는 시험에서 커트라인에서 조금 부족한 점수로 늘 고배를 마셨다.


고심 끝에 인생선배로서 공부 선배로서 몇 가지 조언을 했다. 공부라면 신물이 났을 것 같은 노장 수험생에게 미안할 수 있는 얘기들. 자신의 결점은 잘 보이지 않아 주위의 어느 누구도 얘기하기가 쉽지 않던 그런 소재들...먼저 합격했다고 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기 쉽지는 않다.


그 당시 얘기했던 공부방법론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출제위원이 수험생에게
https://brunch.co.kr/@rok574/55


우연과 행운이 겹쳤는지(혹은 운명인지), 그 후배는 얼마 되지 않아 그 어렵다는 국가고시에 최종 합격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보고 이제야 하늘의 응답을 받았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후배를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청신호가 켜지는 시점은 언제일까. 그 청신호는 운명적인 것일까. 아니면 노력과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 후배가 합격 축하턱을 내는 장소에서 편하게 웃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

"형님, 이제는 제 인생에도 청신호가 켜진 거 같은데. 녹색신호에서 액셀을 조금 밟아봐도 되겠죠?"

"그래.... 일단 중고차라도 산 다음에...... 그전에 첫 월급이나 타보고"

"중고차라뇨. 이왕이면 새차로 뽑아야죠. 할부로라도"

"혹시나 물어보는건데, 운전면허는 있겠지. ㅎㅎ"


그랬다. 그 후배에게도 이제야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부디 전방주시 잘하고 좌우 깜박이 잘 활용해서 정주행하기를.



SH공사 홈페이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경로석 위에서 기분 좋은 광고를 하나 발견했다.


"이제부터 서울은 청신호입니다"


이때 "청신호(靑新戶)"는 서울시와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만든 청년과 신혼부부 맞춤형 공공주택 브랜드를 말한다. 지금처럼 집을 얻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공공주택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정책으로 보였다. 청신호의 혜택을 받아 행복한 둥지를 마련하게 될 이들에게는 웃음꽃이 필 일만 남았다. 아무튼 공공재정의 힘을 빌어 내 집 마련이나 전셋집 구하기 어려운 계층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다양한 시그널 중에 우리가 기다리는 청신호는 언제 올까?


인연에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운명적인 기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
부단한 노력 끝에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의 순간
...........
이런 소중한 기회를 위해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갖다 보면
아마도,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이 나에게 협조적인 때가 올 것이며, 그때가 청신호가 아닐까.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문자나 카톡으로 이런 내용을 받아봤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당신의 하루는(인생은)

청신호입니다"


삶이 고단하거나 무료여러분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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