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지성파파 Oct 13. 2020

세상의 매운맛이 필요한 아들에게

오후 2시쯤 스마트폰 문자가 울린다. 문자 알람의 의미는...
첫째는, 점심메뉴가 결정되었다는 얘기다.
둘째, 카드결제가 되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상호를 바라보니 00 떡볶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엽기적으로 맵다는 그런 종류의 떡볶이였다.
어쩌다 한번 맛을 봤지만 매운 거 빼고는..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맛은 아니었다.
심지어 00 볶음면 같은 매운 라면이 있어서 같이 먹다가 중단했던 적도 있다.


바야흐로 매운맛을 위한 매운맛에 의한 매운맛의 전성시대다.


요즘 아이들은 매운맛을 좋아한다. 우리 집 아이들만 봐도 그렇다. 라면이나 떡볶이, 중국음식 할 것 없이 매운 게 대세다. 대중매체의 각종 먹방 프로에서도 단골 메뉴다. 아이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주요한 원인으로 든다. 먹고 나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는 하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요즘 주위를 돌아보면 철들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중2를 넘어 고등학생이 되고, 성년인 대학생이 되어도 철들지 않은 영혼들이 존재한다. 온실 속의 화초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려운 환경이나 버거운 상황을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어쩌면 경제적 풍요와 부모들의 노력에 기대어 산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부모들 탓은 아니다.


우리 집 아이들만 바라봐도 딱 이런 느낌이다.

풍족한 세상에서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
부족함이 없어 욕구에 대한 절제의 필요성을 덜 느끼는 아이들.
야단맞지 않고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아이들.
어른들이나 선생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들.
아는 것은 많은 것 같으나 오히려 상식이 부족한 아이들.
물질적 풍요를 느끼지만 오히려 정서적 결핍을 많이 느끼는 아이들.
부모가 느끼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간접적으로 못 느끼는 아이들.


어느 날 매운 떡볶이를 먹고 있는 아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진정한 매운맛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아빠는 별 쓸데없는 거를 묻느냐는 핀잔 파편만 되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다시 한번 아들에게 묻고 싶다. 그 맛을 아느냐고... 알고 싶냐고...


아이들은 진정한 매운맛을 알고 있을까? 특히 세상살이로부터 오는 진짜배기 매운맛. 한두 번이라도 그 맛을 경험한 어른들은 피하고 싶은 맛. 그런 맛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아는 세상살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부모들을 포함한 어느 누구에게도... 누군가에게는 만만하거나 쉽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어렵거나 난공불락의 성을 제공하는 세상은 없다. 나름 공평해 보이지만 끝없는 불공평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세상의 극히 일부분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피조물이란 존재의 한계에 머무른다.


얼핏 생각해보면 세상은 너무 쉬워 보이지도 너무 어려워 보이지도 않는다. 딱 견딜 수 있을 만큼이거나 즐길 수 있을 만큼의 고통과 웃음이 주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살이는 살만한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쓰나미가 몰려오거나 뜻밖의 횡재가 연속되는 인생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스토리다. 대충 거기서 거기인 것이 우리네 삶이고 세상살이다.


이러한 세상살이 속에서는 자기 몫만큼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일지도 모른다. 그 밸런스를 어떻게 구할지 고민하는 것 또한 인생의 중요한 여정이다. 이는 가정이나 학교나 학원에서 책으로 배울 수는 없다. 누군가로부터 말이나 문장으로 오는 간접적인 경험도 한계가 있다. 그 균형은 자신이 스스로 체험해서 얻어야 할 인생의 숙제인 것이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아이들 자신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여서...  부모가 많은 것을 대신해주려고 한다. 이때 발생하는 부모의 과잉대응이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다. 아이들을 지켜주고픈 욕심에 아이들이 최소한 느껴야 할 것까지 부모의 몫으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자존감(혹은 자신감)을 살려주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온실 속의 화초나, 노 없는 조각배의 뱃사공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부모들도 그러할진대 아이들에게 인생의 목표 설정은 어렵다. 한참 동안 꿈이 없을 수도 있고, 계속해서 목적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그것들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진 각종의 조언이나 문장들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세상을 너무 쉽게 볼 수 있다는 함정에 빠진다. 원하는 것을 큰 노력 없이 쟁취했거나 부모의 경제력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만 선택적으로 너무 쉽게 만만해 보이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매운 떡볶이와 라면을 즐기듯이 세상을 바라보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부모 입장에서는 그 점이 조심스럽다.


불닭면과 떡볶이, 쫄면과 마라탕에서 느끼는 매운맛은 선택적이고 자발적인 맛보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냥 견디고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맛이 없거나 견디기 힘들면 안 먹으면 되고, 다른 메뉴나 덜 매운맛으로 갈아타면 된다. 하지만 세상살이에서 오는 매운맛은 어떠한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가?

 

마라탕이라 불리는 중국식 매운 요리


우리가 수많은 육아서나 교육 관련 책에서 봐온 문구가 있다. 사랑받고 커온 아이들이 잘 자란다.... 이런 비슷한 얘기들이 계속적으로 동어 반복된다. 이모저모 따져보지 않더라도,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다른 이들을 더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는 다른 차원으로 그 사랑과 보살핌이 아이의 영혼에 철들지 않음을 선물했을 때는 순진한 철부지로 커나갈 수도 있다. 그 불편한 진실은 부모들이 모를 수도 모른척할 수도 있다. 사랑받는 것과 함께 철이 든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 양자가 조화롭게 아이들의 영혼 속에서 싹이 틈을 알아차리는 것은 부모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섬세한 디테일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상대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부분이어서 더욱 그렇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성장과정에서 다양한 성장통을 거친다. 세상살이의 힘듦을 주위에서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다. 왜 경쟁을 해야 하고 왜 노력을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 양보해야 하는지도 몸소 체험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친다. 왜 눈물은 짜고 감정의 스펙트럼이 다양한지... 어떤 때 위로하고 누구를 위로받아야 하는지도 직간접적으로 배운다. 그것이 바람직한 인생이다.


이런 과정이 결여되었을 때 그 아이는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날 기회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영혼이 될수도 있다. 부모와 타인에게 의존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세상을 두려워만 하는 나약한 어린 마음의 어른이 될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타인의 처지를 어떻게 헤아리는지, 타인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타인과 적절한 거리 두는 방식을 모르고 자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때 몸집만 커진 어린아이를 볼 수도 있다.


세상의 어려움과 부모의 고통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만의 이해관계에만 치중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카톡 알람이 울린다. 또다시  아들에게서...(사전 승낙이 아니라 사후 통지에 불과한...)

"아빠, 매운 떡볶이 시켜서 먹을게. 우리가 알아서 주문했어...."(이미 주문해놓고는...)

"아이스크림이 떨어졌는데, 더 사 와도 되지"(거부해도 사 올 거면서...)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한번 정도는 권하고 싶다. 세상의 진정한 매운맛을 맛볼 수 있기를...


하지만 그런 생각의 이면에는 내 아이만큼은 세상의 쓰디쓴 맛을 느끼지 않고 꽃길만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철없는 부모의 바람이 숨어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준생 딸과 아들을 둔 친구들에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