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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Oct 19. 2020

엄마 아빠가 해준 게 뭐 있어란  말이 가슴을 찌를 때

늦은 저녁시간에 아파트 안 길을 달빛을 밟으며 걷고 있을 때였다. 어느 집에서 싸우는듯한 고성이 들렸다. 순간 부부싸움인가 했지만, 여리지만 앙칼진 한마디가 착각을 깨 주었다.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머 있다고, 사사건건 이래라저래라 그러는 건데. 학원 갔다 와서 친구랑 카톡 쫌 하는 건데, 내가 무슨 엄마 말만 듣는 기계야... 에이 C &※$€... 그냥 확 집 나가버릴까 보다."


십 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학생의 목소리였고, 상황은 대략 짐작되었다. 괜스레 못 들을 소리 들을까 봐 얼른 자리를 떴지만 남의 일 같지 않아 불편했다. 대체 이 눔의 익숙한 기시감은 뭐란 말인가.



부모가 되면 가끔씩 아이들로부터 듣는 거친 말이 있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지금까지 먹고 자고 입고 학교 다니는 거는 뭐란 말인가!)


이 문장의 의미는... 오독(誤讀) 일지는 모르겠지만. "부모인 당신이 자식인 나를 잘 키우지 못하고 있다"라는 얘기로 들린다. 순간 화산 폭발 시의 마그마 온도를 직접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자아성찰의 철학적 의미를 체험한다. 진도가 더 나아가면 정신병리학적인 해리 현상(Dissociation)을 진단받을 수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헐... 이런 된장" 정도가 적합하다.

더 이상의 변명거리를 찾다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구차해지거나 가정폭력의 법률적 가치를 깨닫는 못된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한때 우리가 부모에게 했었던(혹은 하려고 마음먹었던) 철부지 멘트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진실 또한  깨닫게 된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맥락에 포함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최악의 대답은.... "내가 너한테 못해준 게 뭐 있어!(거친 액션을 선보이며)" 정도가 아닐까.

왜냐면 아이들의 해준 게 없다는 말은 입증책임의 <부인>에 해당하므로 부모는 스스로 잘해준 것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문제는 부모가 아이에게 잘해준 것을 증명할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미 아이의 말에서 답이 나와 있기 때문에... 따라서 부모의 패소(혹은 패배) 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집과 사무실에서 난 화분이나 꽃화분에 물을 줄 때마다 드는 의문.


내가 일정 주기로 물을 주는 행위가 난이나 꽃을 키운다고 할 수 있을까?
난과 꽃나무는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스스로 자라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왜 키운다고 생각할까...


난이나 꽃에게 생각이란 게 있다면. 자신을 키운다고 건방지게 말하며 물주는 사람의 생각에 동의할까?


"키운다"의 의미가 뭘까? <키우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을 돌보아 몸과 마음을 자라게 하다. 동식물을 돌보아 자라게 하다."정도로 보면 된다.(마음까지 자라게 하는지는 의문이지만)


만약 난이나 꽃이 산이나 들에 있었다면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스스로 자랄 수 있을 터인데. 누가 누구를 키운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집이나 사무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있다 보니 마치 내가 아니면 생존할 수 없다고 착각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런 류의 착각은 대부분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것이다.


난이 자라는데 필요한 세 가지는 적당한 수분, 햇빛, 자양분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은 자연 상태에서는 쉽게 제공된다. 하지만 난을 집안 거실이나 사무실에서 두다 보니 세 가지 모두 누군가의 손을 빌지 않고서는 충족이 어렵다. 친인간적인 난이 처한 가혹한 현실이다.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인간과 식물과의 교감도 중요하다. 물을 주거나 양질의 비료를 통해 영양상태를 좋게 하면서도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자주 만져줄 때 더 잘 자란다. 이는 식물에도 나름의 영혼(?)이 있고 스킨십이 중요함을 증명한다.


난을 잘 키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난과 소통할 수단이 있다면 한번 정도는 물어볼 일이다.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서운할 때 흔히 하는 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이들이 부모에게 서운할 때 가끔씩 내뱉는 말.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부모의 존재 의의는 <의식주>라는 배경과 아이들의 적절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에 있음이 분명하다. 부모가 만들어준 물심양면의 조건하에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자란다.


난에게 물을 주며 했던 질문과 마찬가지로. 밥을 해주고 옷을 사주고 잘 집을 제공하는 행위가 자신을 키운다고 하는 부모의 생각에 동의할까? 아이들의 속내는 어떨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모 입장에서 혹여나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 임을 망각했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주는 의식주의 배경 아래 "스스로 커나가는 존재"임에도 아이들을 수동적인 존재로만 여겼을 수도 있다. 쉽게 보이는 물질적인 조건에만 치중하고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여건>에는 소홀히 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이. 부모와 아이들과이상적인 관계 형성은 성장단계별로 이론적으로 존재한다. 다만 각각의 가정에서 현실적인 부모와 아이들 간의 관계에서는 훨씬 덜 이상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부모들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관계의 상대성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배신의 감정도 존재한다. 이와는 반대로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불신의 감정도 존재한다.


식물과의 교감도 중요한데 하물며... 그렇지만 현실을 둘러보면 작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생활 속에서 아이들과의 교감하고 소통하고자 소소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아이들이 등을 보인다고 해서 부모마저도 같이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는지. 부모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았는지... 등과 같은 불편한 기억들. 


아이들이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상처를 주고자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 나름대로 부모에게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형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부모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것이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시키는 계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저런 말을 여러 번 듣더라도 마음속에 새겨두지는 말자. 가슴 아프고 짜증 나고 분노할 수 있지만, 저런 말 한두 번 안 듣고 살아가는 부모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라는 말이 이렇게 들렸으면 한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해주신 것은 많지만, 나는 스스로 잘 커나가는 존재라는 걸 말하고 싶어!"(나는 난이나 꽃과는 다른 존재야! 이런 내 마음도 이해해줘... 그러니까 제발 잔소리 좀 하지 말아 줬으면.)


아이들의 거친 말이 부모 가슴에 상처를 줄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발 맞는 말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혼자서도 잘 커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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