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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Apr 15. 2022

지금은 미디어 다이어트가 필요한때

뉴스 중독에서 벗어나야 할 때

아침에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무엇일까?    

 

아마도 생리적인 현상 해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날씨를 확인하고 뉴스를 검색할 것이다. 뉴스거리의 대다수는 어젯밤 늦게 확인했던 것이고 새로운 것은 거의 없음에도... 무언가 새로운 소식을 찾아 헤매는 아침 루틴을 버리지 못한다.     


뉴스를 보고 커피를 마시며 더 새로운 뉴스를 찾고, 점심을 함께 먹으며 알고 있는 뉴스를 확인하고 교환한다. 저녁에는 또다시 더욱더 새로운 소식에 관심을 갖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혹시 모르고 지나치는 뉴스가 있을까 봐 궁금해하는 하루를 살아간다. 이른바 뉴스 중독이다.    

 

이렇게 뉴스에 중독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의 삶이 지루하고 단조로워서 그럴 수도 있다. 개인의 삶 자체가 역동적이지 않아서, 색다른 즐거움이 없어서, 관심을 둘만한 대상이 없어서, 세상사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표현하고 싶어서 등 미디어 속의 뉴스를 자주 들여야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개인의 삶이 재미가 없거나 목표가 없을 때 뉴스의 포로가 된다는 거다. 뉴스에 목을 매단 연령대를 잘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더불어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고 세상살이에 관심이 많은 세상이다. 우리 사회처럼 이념적 좌표, 출신지역이나 경제적 부에 따른 정치적 편향이 강할수록 정치적 이슈는 개인의 관심을 초월한다. 비정치적 영역의 이슈조차도 언론매체에 의해 정치적으로 포장되면 댓글은 지극히 정치적인 단면을 보이고야 만다. 우리 정치의 부정적인 현주소다. 최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보면 그 답은 명확하다. 개인의 삶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감수성(?)이 불행한 선택을 불러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과잉정치화가 불러온 부작용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바람직한 정치적 관심이 증가하는 것과 품격 낮은 정치적 이슈와 그 당사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양자가 섞여있거나 주객이 바뀌어져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잘못된 정치적 관심의 폭증은 오도된 계급(혹은 계층) 투표나 착오적 성향의 민심을 형성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2022년 3월 우리가 그랬다.    

                 


우리 언론과 뉴스는 우리에게 재미와 성찰을 주고 있을까?     


언론의 정확한 사실 전달과 비판기능은 자유와 민주사회의 대 전제다. 이 최소한의 역할조차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언론은 어떠한가?(물론 이 질문은 극히 주관적인 의문일 수도 있다.) 그들이 전하는 어떤 뉴스의 경우에는 그 팩트가 가진 최소한의 민낯조차 보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화장(化粧)되거나 왜곡된 사실을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변용되고 해석된 사실을 봐야 하는 것은 우리 언론과 시민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언론 주체가 이러한 괴현상을 깨닫지 못하고 어용(御用)과 주구(走狗)의 역할에 충실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시민사회가 이러한 언론권력의 오남용을 꾸짖지 못하고 부화뇌동하는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보도와 날 선 비판은 언론의 숙명이다. 자신들의 존재 의의와 대의를 저버린 이러한 행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시민들과 우리의 역사다. 더불어 이들의 난장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역량과 열정의 낭비를 불러온다. 보다 중요한 사회적 어젠다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모적 의혹이나 개인의 신변잡기에 사회나 개인의 열정을 낭비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 그 필연성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또 한 페이지의 불행한 역사를 써야 한다.     


작금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가 얼마나 많은가. 정치와 경제, 세계정세와 안보, 사회문화와 복지의 문제 들... 우리가 깨어서 힘을 모아야 할 대상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 사회의 미래와 후세를 위한 주제와 가치는 얼마나 다양한가. 바람직한 국가발전을 위해 사회적 역량을 모아야 할 사회적 의제는 얼마나 쌓여있는가. 그들의 눈과 귀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걸까?

     

그럼에도 비현실적 상황인식이 뉴스의 메인을 차지하고, 가짜 뉴스에 가까운 기사거리에 시간을 소비하는 현실을 목도한다. 그 와중에 몇몇 어설픈 인플루언서들의 의견이 바람직한 가치로 널리 퍼지고,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할 개인들의 인식은 오그라들어 사라지고 만다. 정신건강에 해로운 사이다 발언과 인격모독의 경계 사이에서 개인의 호기심은 길을 잃고 만다. 만약 언론이 이런 사회와 시민들을 원했다면 그들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미디어와 뉴스에 대한 다이어트가 절실하다.  

    

언론이 만들어 낸(낼) 세상과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제공되는 정보의 쓰나미를 알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고 있는가. 개인의 삶과 아무런 관계없는 타인의 사건사고나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사생활 등 가십에 목말라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좀비 상태로 이끌지 않았을까.    

  

내 몸의 과도한 지방을 배출하는 다이어트처럼 불필요하고 유익하지 않은 정보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목마른 좀비처럼 뉴스만을 찾아다닌다면 끝없는 갈증을 가져오는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언론이 가져다주는 오염된 뉴스에 관심을 보일수록 우리의 갈증은 우리의 영혼과 양심을 잠식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내 개인의 삶에 흥미와 재미를 더해야 한다.

허상 같은 타인의 삶에는 적절히 무관심해야 한다.

중요한 사회적 문제와 어젠다에 의미 있는 관심과 날 선 비판을 보내야 한다.

그것만이 언론의 우민화 프로젝트에 우롱당하지 않는 해법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뉴스거리를 찾아 헤매다 보면...

우리는 성배도 아닌 독배를,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생수가 아닌 설탕과 합성화합물이 잔뜩 들어간 음료를 마시며

치유 불가능한 삶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희희낙락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대사증후군에 둘러싸인 불행한 현대사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선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진정 그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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