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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Jun 16. 2022

시험과 성적 사이에서 경쟁 문법을 공부하는 아들에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첫 중간고사를  치른 후 아들은 성장통을 앓았다. 엄마 아빠가 과도한 기대를 심어준 것도 아니었는데,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음을 여러 번 표현했다. 물어보지도 않았음에도...

"아! 수학을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쉽네"

"아빠 말대로 국어는 자습서를 보면서 복습을 했어야 했는데... 다음 기말에는..."   

  

아들이 첫 시험에서 얻은 소득중 하나는 스스로 공부방법을 반성했다는 것이다. 사교육 없이 혼자서 한 수학 공부에 대해 적으나마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도 소기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자기주도학습의 전형은 아닐지라도, 부모의 적극적인 관여나 사교육의 큰 도움 없이 자신의 계획하에 치른 시험 결과는 철부지(?)에게도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했을 것이다.     


아들의 시험성적표를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보여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자기반성을 보고는 한편으로는 대견하면서도 짠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부정하지 못할 명제를 자신의 일상과 생각 속에 녹여낸 까닭이었다. 중학교 때와는 더 큰 경쟁의 터로 뛰어든 덕분에 다른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밥벌이를 위해서나 숭고한(?) 무언가를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하고 경쟁을 한다. 좀 더 높은 의자에 앉기 위해 더 높은 등급의 성적을 바라고, 소위 선망하는 대학과 직업군에 들어가기를 소망한다. 아들도 자신만의 바람을 위해 수학 문제를 한 문제라도 더 풀지 않았을까.     


잘살아보고자 하는 욕망 속에는 늘 ‘경쟁’과 그 도구로서의 ‘공부’가 존재한다. 이상적인 경쟁은 선의를 전제로 공정한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배분의 배분의 결과를 낳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 속의 경쟁은 이상과는 너무 거리가 먼 총칼 없는 전쟁이다. 말로는 선의의 경쟁과 공정의 룰을 외치지만... 보이지 않는 손과 부모 찬스, 경제력으로 인한 도구의 경쟁은 치열한 전투를 무색게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된다는 전쟁터의 논리를 철저히 따른다. 그런 측면에서 성장과 배움의 터인 "학교"는 소리 없는 전쟁터일 수 있겠다. 우리의 내면 깊숙이 각인된 원시적인 욕망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는 삶이라는 전선으로 내보내진 전사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치러야 하는 전투는 정글의 그것이 아니기에 일정한 전제가 필요했다. 적어도 공정한 경쟁과 기회의 균등, 상식적인 룰이 적용되는 사회라는 전제를 가져야 했다.(국문법 시제에도 없는 과거 전제형이라 해야 할까?) 그러나 이러한 착각이 얼마나 순진한지를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우리의 주위에는 경쟁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스스로 선민의식을 가진 자들이 경쟁의 이름 앞에 붙인 수많은 비정상의 수사(修辭)들. 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결과들.   

  

우리는 이미 출발선이 다른 경주와 대리 경쟁이 가능한 수많은 "00 찬스"를 확인할 수 있는 충분한 사례를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일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부모의 관여 없는 전투에서 분투 중인 아들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낼 수 있겠다.    

      


아들은 스팸을 구워서 김 위에 올려놓으며 한마디를 던진다. 잘 익은 배추김치를 덤으로 얹어놓았다. 역시나 스팸에는 김치지 하면서...

"아빠, 우리 미술 선생님이 미술 한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진지하게 묻던데...."(아빠의 생각을 묻는 것이었다.)

"그래, 네가 정밀화나 데생 같은 거를 배우지 않았으면서도 잘하기는 하지.... 근데 순수 미술 그쪽은 먹고살기 힘들지 않을까?"

"그니까, 요새 웹툰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분야도 괜찮은 것 같은데..." 


"아빠 생각에도 미술은 조금씩 공부하되 바로 직업으로 하기보다는 특기나 취미 정도로 꾸준히 하면 되지 않을까? “

”아빠 생각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더욱 글과 그림이 어우러지는 영역의 가치는 높아질 것 같은데.. “   

"브런치에 네 그림과 너만의 이야기를 올려봐...<고딩의 입시지옥 탈출일기> 같은 제목으로"

  

우리는 자신과의 싸움과 타인과의 경쟁, 다양한 세상살이의 도전과 응전 속에서 살아간다. "나"라는 브랜드의 상품화를 위해 히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수많은 경쟁의 에서 승자는 그만큼의 전리품을 가져가고, 패자 또한 그만큼의 전리품을 안고 살아간다. 서로가 투자한 노력과 부여받은 결과에 크게 불만이 없다. 이것이 경쟁이 주는 진정한 의미이며, 우리가 바라는 <경쟁 문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법이 우리 현실 속 경쟁 과정에 공정한 기회 부여와 타협 가능한 공정의 룰이 전제가 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이는 부질없는 구호에 그치고 만다.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지만, 철학 없는 승자독식의 세상이 열렸다. 능력주의로 포장되어 1등만 기억한다는 나쁜 세상이 문을 열었다. 능력과 소질의 다양성에 대한 고려는 인간세상을 이루는 근간 이건만. 마치 딴 나라 이야기처럼 '시험만 잘 보면 된다'는 공붓벌레(?)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특히 요즘의 대한민국이 그렇다.     


물론 대부분의 공부를 열심히 했던 범생이들은 자신의 삶과 사회에 선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극히 일부 소년등과나 고시 합격을 특별한 벼슬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어서 문제다. 이들은 편협한 전문성과 자신들의 능력에 대한 거대한 착각을 탑재한 까닭에 스스로를 좀먹고 사회를 불행에 빠뜨리고야 만다. 중국 송대의 학자 정이가 말했던 인생삼불행(人生三不幸)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다. 천 년 전이나 2022년이나 세상의 이치와 사람들의 성정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군자들의 덕목과 식견이 사라진 지금이 더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아이러니다.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꾼다. 그 공동체는 각 개인들의 치열한 경쟁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사회적 직업과 경제적 부에 따른 행복의 차이를 부정할 수 없다. 늘 평등한 사회를 말하면서도 노력에 따른 능력 이외의 불공정에 대해서는 말하기 불편한 세상이다. 이것은 어두웠던  1970~1980년대나 깨어있다고 하는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나약한 개인들의 선택은 제한적이고, 힘없는 개인들의 바람은 더 제한적이다. 그러기에 기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은 특정 지역의 아파트 가격처럼 견고해지고 오만해진다. 모든 기회와 결과는 부조리한 소수에게 검찰의 기소권 마냥 선택 지향적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곧 기말고사의 시즌이 다가올 것이다. 아들이 경쟁사회의 비정한 문법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도 선택과목으로 화학과 물리 두 과목의 쓸모에 대해 얘기했다. 둘 다 득점과 등급 유지가 어려운 과목이라 많이 꺼려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본인에게 필요하다면 과감히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누군가는 세상의 엉터리 룰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마이웨이를 외칠 수도 있지 않은가. 조심스럽지만 우리 아이들이 경쟁 문법을 파괴하는 승자가 되기보다는 공정경쟁의 성과에 만족하는 승자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렇다고 아들에게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름답다’라는 클리셰(cliche)는 말하지 않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그 이유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들이대다 보면 피곤하거나 손해 보는 건 ‘나 혹은 우리’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씩 경쟁 문법의 참된 의미와 그 선한 결과에 대해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시험은 최소한의 자격 평가이지 최대한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들은 부모에게 무리한 부모 찬스를 요구하거나 그 비슷한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일찍이 부모의 능력을 간파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존중하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수많은 경쟁의 전장에서 능력과 노력에 걸맞은 결과를 마주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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