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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Jan 12. 2022

국민 수능, 공인중개사 시험이 말해주는 것들

이 글은 우리 주위에 흔한 B부장*들의 자기 고백과 미래가 담긴 이야기다. 그들의 플랜 B, 인생재건축에서의 건투를 빈다.


어떤 시험 하나가 우리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오전의 늦잠은 행복의 아이콘이다. 매일 늦은 귀가 탓에 주말 아침의 느긋함을 즐기려던 B부장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오늘은 자신이 국민수능으로 불리는 시험을 치러야 하는 까닭이다. 부동산중개전문가라 불리는 공인중개사.


얼마 전까지는 생각지도 않은 시험이었기에 부족한 공부시간과 애매한 난이도 때문에 어젯밤에도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제 객관식 공부를 했는지 까마득했다. 모처럼 긴장하고 공부를 해서 그런지 설레기까지 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예정에도 없던 시간표를 짜고 자투리 시간에도 책을 보며 지냈다. 코로나 시국에도 스크린 골프나 저녁 약속을 피하지 않았던 B부장이 아니던가. 무언가 다른 절박함이 그를 책에 붙들어두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B부장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셈법이 존재했다. 문득, 오래전부터 들어오던 오륙도와 사오정의 전설이 이제는 자신의 얘기일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감당할 수 없는 쓰나미처럼... 호흡이 거칠어지고 생각이 사라졌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당장 이거라도 하는 심정으로 지난 몇 개월을 집 앞 독서실에서 고3들을 경쟁자로 책장을 넘겼다. 새로운 영역을 공부하는 신선함은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하염없이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한밤중에 자신이 왜 여기에서 수험서를 보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즐겨왔던 골프공과 탁구공, 그리고 시원한 생맥주가 끊임없이 B부장에게 유혹의 시선을 보냈다.

 

부동산중개사협회 통계(2021년)에 의하면. 자격증 취득자가 50여만 명에 이르고, 그중 개업공인중개사는 11만 명 정도라고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날 시험 접수인원은 41만 명으로 2021년도 수능 응시인원인 49만 명에 육박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이나 그 유용성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와 별론으로 세대와 연령에 관계없이 절박한 무언가가 응시인원을 급속히 증가하게 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제 하나의 직업으로 한 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아침부터 B부장의 가슴은 답답했다. 전형적인 삼식(三食)이 체질임에도 이날만은 아침식사가 탐탁지 않았다.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며 수험장인 00 고등학교 3층에 있는 제17시험실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수험생들이 자리에 앉아 책을 넘기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은 B부장은 자신이 아무런 준비 없이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 시험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은 불구덩이 속에서 타들어갔지만, 창밖의 가을 하늘은 티 없이 맑기만 했다. 1교시 시작 벨이 울렸다.

            



어떤 조직도 개인을 책임지지 않는다.

오롯이 개인의 미래는 자신의 책임으로 남는다.


B부장은 얼마 전 K그룹의 금융회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던 친구와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그 친구는 신입사원 때부터 본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30여 년 가까운 재직기간 중 4/5 이상을 핵심 전략부서에서 근무할 정도로 잘 나가던 친구였다. 사원들의 별이라는 임원 승진까지 바라볼 정도로 촉망받던 친구.

 

아침 7시 전 출근과 밤 10시 퇴근을 일상으로 여기던 까닭에 친구들이나 동창들 모임에는 소극적이었다. 임원들과의 골프 약속이 소중했고, 직장 상사의 애경사가 먼저였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느 드라마 주인공처럼 회사가 친구였고 가족이었다. 그러던 친구에게 최근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1년 재교육 훈련을 통한 부서 재배치.(25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 재교육이지 만년 부장들과 일부 고참급 사원들의 명예퇴직을 유도하는 조치였다. 이 교육을 통해 대상자 중 성적 하위 절반은 6개월 이내에 퇴직을 하게 되고, 나머지는 재배치하되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되거나 아예 팀원이 없는 팀장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그 친구는 후자였지만 고민은 깊어갔다.


남겨진 이들에게는 직급과 직책만 있고 업무는 없는 상황이라 출근을 해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대신 일정기간 근무할 수 있는 시간적 유예는 준다고 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그 친구를 포함한 많은 간부급 직원들이 회사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터라 회사 업무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밥벌이 수단이 없다는 거다. 조직에서 얻은 노하우는 그 조직을 떠나면 거의 쓸모없거나 돈벌이 수단이 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조직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6개월 이전에 사표를 썼고,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마지막까지 버텼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 더 이상 성장 없는 회사생활을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이며 예정된 미래다.

 

친구의 머릿속에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쏟아부었던 지난날과 아직 졸업하지 못한 둘째 아이가 떠올랐다. 두 아이의 결혼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여기서 그냥 둘 수는 없다. 무언가 해야 한다. (환금할 수 없는) 집 한 채와 생각보다 적은 연금으로는 노후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죄 없는 발등에 도끼와 불이 동시에 떨어졌다. 불안해하는 친구의 얼굴에 주름이 하나 더 늘었다.    


친구와 저녁을 함께하고 돌아오던 B부장의 머릿속에는 2년 전부터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와 최근 명예퇴직당한 친구가 떠올랐다.

      



미래의 청사진이 불명확할 때가 변화할 수 있는 최적기다.  


B부장은 긴장감이 가득한 시험장 안에서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엿보았다. 맑은 하늘에 희뿌연 구름이 몰려오는 듯 자신의 미래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부모와 자식 세대가 경쟁하고 먹고살거리가 절박해지는 현실. 그 미래의 풍경이 컴퓨터 사인펜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노안으로  시험문제를 더 멀리서 봐야 하는 덕분(?)에 주위의 수험생들을 더 자세히 둘러보았다.


다양한 연령층의 수험생들이 문제지를 넘기고 있었다. 노령으로 보이는 한분은 돋보기를 들고 시험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저마다 응시 동기가 있겠지만, 모두에게 행운이 있을 거라고 응원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의 비율이 높은 것을 보면, 취업문제가 취준생들의 고민을 깊어지게 하고 있음을 절감했다. 어쩌면 그들의 가족들까지도 심리적 취업전선에 동참하고 있을 것이다.

 

저마다 수험의 비기(器)가 닮긴 노트와 요약서를 넘기는 모습을 보니 지하철 플랫폼의 공인중개사 학원 광고가 떠올랐다. 서울대 출신인 개그맨이 광고하는 회사명도 스쳐 지나갔다. 각종 언론매체나 라디오에서 수없이 광고 카피를 외치다 보니 이제 초등학교 아이들도 상호를 외울 수 있었다. 대부분 자신들이 점유율 1위임을 내세우며 인강 수강과 교재 구매를 애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국민수능이... 수험생들보다는 출판사나 학원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쟁터가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수험생들은 곰처럼 재주를 부리고 그들은 돈을 주워 담는... 그중에 많은 B부장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특별한 목적의식과 동기 없이 무언가를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것을 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그것들은 대부분 시간낭비나 사용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거나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세상이 부추기고 스스로가 부화뇌동하고 있음을 느낄 때 우리는 “비애감”이라는 감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밥벌이를 위해 이거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B부장도 마찬가지였다. 답안지에 마지막 문제를 마킹하던 B부장의 머릿속에 몇 가지 의문이 솟아났다.

   

들은 왜, 무엇을 위하여 이 자리에 있을까?      

과연 이 시험의 결과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른 방법은,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수단은 없을까?


B부장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과 친구들의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준비성이 부족한 자신들 탓일까 아니면 수상한 시절 탓일까.

갑자기 그 시작과 끝이 궁금해졌다.

 


<B부장*>: 어찌 되었건 지나간 과거를 늘 후회하고, 물려받은 수저의 성분이 귀금속이 아닌 이들을 <B부장>이라 부르자. 혹여 그 위에 A부장나 아래에 C부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자. 여기서 <B부장>은 우리 주위의 보통의 존재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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