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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Jan 21. 2022

이제는 낭만적 자기계발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

'적당히 알아서 되겠지'의 뒤끝

이 글은 우리 주위에 흔한 B부장들의 자기 고백과 미래가 담긴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플랜 B, 인생 재건축에서의 건투를 빈다.



누구나 알듯이, 이제 평생직장은 없다.


전문가의 말을 빌자면 우리 대부분은 2~5개의 직장을 거쳐 가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법정 정년은 만 60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법정(法定)’은 말 그대로 법률이 보장하는 상한선에 불과하다. 때문에 직군의 유형에 따라 다양한 정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오정’이라는 말은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공무원이나 일부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는 법이 정한 정년을 보장받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다. 여기에 ‘백세 인생’이라는 신조어가 우리를 또 하나의 불안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렇다면 퇴직 이후의 백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평생 든든한 라이선스에 의해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플랜 A의 인생에서 성공한 일부를 제외하고 우리 대부분의 노후는 불안하다. 그것은 대학 전공을 문과대이건 공대이건 특별한 차이는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빠른 비자발적 퇴직에 멘탈이 붕괴된 지인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40~50대에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자기계발의 영역으로 착각한 이들은 더 그렇다.


금융자산이건 비금융자산이든 자산규모가 노후를 행복하게 할 정도로 갖추고 있다면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현금화할 수 없는 집 한 채, 억 단위로 갚아야 할 금액이 찍힌 마이너스 통장,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를 생각해보면 캄캄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이는 없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자신의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는 까닭에 대기업이든 공무원이나 공공조직이든 간에 불안한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생 플랜 B가 필요하다. 하지만...


막상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날 때가 돼서야 자신의 준비가 철저했는지 자신의 예상이 의미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동안 우리 대부분은 낭만적 자기계발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이 주는 안온함에 빠져 살아왔다.  그러기에 이 급격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은 누구에게나 충격이 된다.




막연한 준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유능한 후배 K의 얘기다. 이 친구는 대학 전공 때문에 이직과 전직이 자유로웠다. 다른 친구들이 한 직장에서 승진과 연봉이 지지부진할 때 소위 승승장구의 대열에 합류했다. 첫 직장을 굴지의 대기업에서 시작했고, 국내와 국외 사업부를 수시로 넘나들었다. 스카우트를 통해 직장을 옮길 때마다 명함과 연봉, 직급이 바뀌었다. 주위에서는 '변신도 능력'이라며 다들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뛰어난 실무능력과 언어 구사력으로 외국계 컨설팅 업체에서도 스카우트를 제의했던 그 후배는 학교 선후배들 사이에서 성공한 케이스 중 한 명이었다. 잘 나가던 30대와 40대는 아무런 문제도 장애도 없었다. 그러다 ᆢ50이 넘어 어느 순간 부르는 곳이 없었다. 이직의 귀재라는 별명이 무색해졌다. 그나마 최근 일자리에서도 3년 계약이 2년 계약으로 바뀌고, 다시 1년으로... 작년에는 그마저도 계약 갱신이 거절당했다. 이제 이 친구의 쓸모는 사라진 걸까?

     

문제는 이 후배 또한 자신의 미래를 방치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나름의 고민을 통해 자신의 50대 중반 이후의 삶을 위해 틈틈이 고민했었다. 무지갯빛 환상까지는 아닐지라도 다년간의 실무경력과 외국어 능력을 통해 기업 컨설팅을 하고자 했었다. 십여 년 전 대화할 무렵에도 자신이 원하는 '그런 시장'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했었다. 더 큰 문제는 50대 중반이 된 지금.... 본인이 계획했던 플랜을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는 거다.


후배의 말을 빌자면. 자신이 이런저런 이력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일정 나이에는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에서 경험한 프로젝트와 다양한 직급에서 얻었던 실무형 지식. 그 경험과 지식이 필요한 시장이 사라진 걸까. 아니면 후배스펙이 문제였을까? 손에 잡힐 것 같은 미래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어느 날 자신을 살펴봤다.


이 친구에게는 세 가지가 없었다. 경험이 구체화된 포트폴리오가 없고, 자신의 업무(경험) 증명할만한 공인 자격증이 없고, 본인만의 특화된 커리어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것도 치명적인. 누구나 거칠 수 있는 일반적인 경험과 보다 특별한 능력을 증명할 만 라이선스의 부재, 비슷한 동년배가 거쳐 올 수 있는 커리어만 가지고는 십여 년 전의 자신의 계획이 실효성이 없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비단, 이런 상황이 후배만의 일일까?




꼼꼼한 준비도 상황에 따라 "꽝"이 될 수도 있다.


공조직에 있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만난다. 그중 마음이 잘 통해 친구가 된 00 은행 지점장 S의 얘기다. 경제적 상황 변화의 파급효과가 가장 큰 집단 중 하나가 금융권이다. 은행원이라고 해서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지점장 자리까지 승진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 선후배 여러 기수가 힘든 경쟁을 하고, 직원들의 금융사건사고를 피해야 하고, 적당한 행운까지 받쳐줘야 오십이 넘어 지점장이라는 명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점장이 되더라도 영업 매출액의 압박에서 끊임없이 힘들어한다.


흔히들 은행원 하면 고연봉자들로 알려져 있다. 예대금리 마진과 각종 파생상품 판매를 통한 은행의 매출은 직원들의 월급으로 귀결된다. 시중은행의 대졸 초임 임금은 에너지 관련 회사나 통신 업계의 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복지 수준 또한 어느 업종보다 좋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은행이라는 거대 조직이 주는 평온함이 그 출신들에게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친구도 금융권이 커나가는 시점에 은행에 입사해서 혜택을 많이 누렸다. 여러 단계의 승진 경쟁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을 했고, 복리후생으로 아이들 교육비까지 별 무리 없이 해결했다. 가족들과 매년 유럽이나 미주 해외여행을 하고 풍부한 여가생활을 즐겼다. 이십 년 넘게 접대용으로 배운 골프는 수준급이다.


은행원의 정년도 여느 조직과 같지만. 55세부터 임금 피크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때 은행을 떠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발 빠르게 은밀하게 자신의 노후를 준비한다. S 또한 먼저 나간 선배들의 후회를 밑거름 삼아 자신의 노후설계를 준비했다. 성장기 시절의 은행원을 거친 대부분의 선배들은 고연봉과 편안함을 구가하다가 대부분 연금생활자나 아파트 관리소장 등에 머물러 있었다. 은행의 임원도 하늘의 별따기인지라 지점장까지 했던 대부분의 부장들은 두세 번 정도 지점을 옮기다 보면 나갈 때가 된다고 한다.


S는 본점의 신탁영업부서나 VIP운용부서 경험을 바탕으로 노후설계나 연금설계 등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은행 경력자 중 퇴직 후에도 잘 나가는 이들이 거치는 코스가 노후설계 쪽이다 보니 S도 틈틈이 사내강사와 외부강의도 도맡아서 진행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네이버 블로그에 자신의 경험과 업무 노하우를 살려 자신의 나아갈 바를 기록하기도 했다. 강의스킬을 위해서 전문가들로부터 개인 레슨을 받기도 했고, 자신만의 특화된 강의안에 만전을 기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내 맘 같지 않은 법. 노후설계 분야의 준비는 확실했지만, 현실은 예상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느닷없는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강의 시장이 막히고, 치열한 온라인 시장은 다년간 기초를 닦아온 기득권자들의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트러스톤 자산운용 연금포럼의 강창희 대표 같은 역할을 고대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S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온라인에서 명성을 얻고 비중 있는 역할을 할 날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언제 이 상황이 풀릴지 모를 일이다. 임금피크제가 바로 눈앞에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 K나 은행원 친구 S의 경우를 보면 자기 계발이 낭만적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냥 취미 정도의 수준이거나 그 준비가 미흡할 경우 아무런 준비가 없는 것과 같다. 또한 특별한 라이선스 없이 일반적인 스펙 정도로는 엄청난 레드오션의 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경우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여러 B부장들의 현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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