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민국 대통령 채용시험의 면접관입니다
3월의 토요일 아침. 여러 가족들이 사전투표 때문에 부산스러웠다. 음악방송 중간에 흘러나오는 뉴스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얘기하고 있었다. 양국의 전사자들과 전쟁터로 떠나는 아빠와 딸의 배웅 장면을 전하고 있었다. 저 멀리 다른 나라의 상황이지만, 전쟁의 공포는 고1인 아들에게도 가까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아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글쎄...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그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아주 끔찍하겠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근데, 아빠는 왜 해병대를 간 거야? 나 같으면 군대는 편하게 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가능하면 면제도 괜찮고..."
아들과 대화를 하면서 군입대를 했던 1987년을 생각했다. 대학생이던 그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특수전 부대를 가고 싶었다. 소위 ‘공수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문의하던 나에게 모병관이 말했다.
"대학생은 지원이 안 됩니다. 특전부대는 대부분 하사관으로 3년 이상 근무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휴학기간이 3년 이내인 대학생들은 학업포기를 하지 않는 이상 지원할 수 없습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사병으로 차출되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지만.... "
아뿔싸. 당혹해하던 나에게, 바로 옆자리에 빨간 명찰의 군인이 미소를 지었다. 멋진 팔각모를 쓴 그 모병관은 환한 웃음으로 내 손을 이끌며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해병대는 2년 6개월 복무이기 때문에 대학생들은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정예부대인 해병대에 지원하십시오.... "
고민도 잠시, 어느 순간 해병대 입대 지원서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하고 있었다. 지원조건은 고등학교 내신 성적과 나안시력 0.6이 이상이라는 것 정도만 나와 있었다. 체력과 운동신경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시력이 문제였다. 고2까지 1.5였지만, 무슨 이유인지 고3 이후 0.4~0.5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해병대에서는 안경을 착용할 수가 없었다.(예외적으로 사격훈련 시에는 안경 착용을 허용했다.)
입영을 위한 신체검사를 두 번 했다. 지방 병무청에서 한번, 포항 해병 1사단의 훈련단에서 한번. 신체검사 당일 군인들이 실시하는 검사절차는 엄격했다. 나안시력을 측정하기 때문에 직접 렌즈 착용자들을 골라냈다. 시력측정 때문에 고민스러웠다. 앞선 번호의 지원자들을 보면서 방법 하나를 생각해냈다. 줄을 지어 이동할 때 0.6부터 1.0 사이의 숫자와 기호들을 모두 암기하는 방법이었다.
아무튼 이 방법으로 두 번의 신체검사를 통과해서 군사정권 시절 해병 제1사단에서 30개월의 군생활을 했다. 최근 '강철부대'란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체 건강한 이십 대를 떠올려봤다. 아직도 특수전 부대에서 복무해보지 못했던 이십 대와 그 이유가 못내 아쉬웠다.
전쟁의 공포와 군입대의 두려움은 경험하지 못하면 말할 수 없다. 아빠의 군입대 상황을 말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이 감내해야 할 국방의 의무를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쓰려왔다. 집에서 사전투표소까지 가는 길에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엄중함'을 여러 번 떠올렸다.
"아빠, 이번에 누가 대통령이 될까... 아니 되어야 할까? "
아직 선거권이 없는 아들은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들의 벽보를 보면서 계속 궁금해했다. 아빠 역시 궁금했다. 우리 사회가 군사정권을 지나 문민정부와 더불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해도 아직 불온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었다. 역사의 퇴행이라는 불안과 걱정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안갯속 선거정국이다. 지금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공동체는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할까?
우리 어른들은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부끄럼 없는 나라를 물려줄 수 있을까?
물론 혼자만의 고민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생각 일 것이다. 한 나라의 품격과 가치는 전체 국민과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공복 모두가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제 시스템 하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의 철학과 능력이 중요하다. 국민과 국가운영을 위한 중차대한 결정과 국가 내외부의 위기 시 정확한 판단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도덕성과 경험, 의지와 열정 모두가 국정운영과 연결된다. 후보자와 가족들 스스로가 걸어온 공정과 상식은 말할 것도 없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은 우리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못 따라갈지도 모른다. 그들만의 정치적 욕망과 가식에 둘러싸여 속물 같은 엘리트즘을 표방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의 생존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과 정파적 가치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수많은 국민들은 그저 선거 때 사용하고 버리는 한 장의 카드로 보일 수도 있겠다.
민주주의 정체에서 선거는 우리들과 우리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모름지기 역사는 정반합으로 발전할 수는 있지만 후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과거의 망령과 특수한 집단의 이익(혹은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소수자들의 역사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일제 치하와 분단 상황에서의 미진했던 과거를 다시는 경험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2022년 3월 대한민국을 위해 봉사할 대통령을 공개 채용하고 있다. 선거권을 가진 우리 국민 모두는 대통령 공개채용시험의 공식적인 면접관이다.
우리에게 그들의 철학과 경험, 의지와 능력으로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공개되어 있다. 물론 일부 후보의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비공개되거나 은닉되어 있어 우리의 균형감각을 흐리게 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후보자들에 대한 미완의 정보나 사실에 대한 판단과 결정까지도 오롯이 우리 면접관들의 몫이다. 우리 모두에게 부적격자를 걸러내고 적격자에게 자격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혜안이 길러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면접관들은... 남북 분단 상황을 잘 이해하고 세계적 역학 구조하에서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현자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역사적 가치를 추구하고 국민 모두가 잘 먹고 살아갈 경제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일꾼을. 저출생 문제와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공동체적 지혜를 모을 줄 아는 협상가를. 남녀가 평등한 사회와 아이들이 즐거워야 할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후보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 시험에 응시한 후보자는 열명이 넘지만,
우리가 면접 절차에서 다수결을 통해 선택해야 할 단 한 사람, 그는 누구일까?
역사의 수험생이자 면접관으로서 행사하는 소중한 한 표는 역시나 우리의 역사를 바꿀 것이다. 우리 면접관들에게도 공정과 상식은 중요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