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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Nov 25. 2022

관계의 해법, 우리는 몇 개의 가면(얼굴)이 필요할까?

상처입지 않을 자유를 위해... 몇 개의 가면을 권합니다

아침이면 누구나 집을 나선다. 회사나 학교에 또는 영업장소에 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챙겨야 될 것들이 있다. 핸드폰과 개별적 일용품이 들어있는 가방과 책 권, 혹시 몰라서 우산까지....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


영업업무 25년 차가 넘는 김부장은 아침에 출근할 때 세 개의 가면을 챙긴다. 거래처 영업을 위해, 사무실에서 업무를 위해, 자신을 위해 각각 다른 얼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업용은 간 쓸개를 빼주고도 웃을 수 있는 상대방 지향적인 얼굴. 사무실용은 공과 사를 구분하며 기획안을 결재하는 합리적인 관리자의 얼굴.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멘탈과 내면을 마주할 수 있는 본연의 얼굴이다. 대리 시절에는 이런 준비가 없어 힘들어했고, 가면을 준비한 초기에는 잘못된 타이밍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 이제는 그동안의 노하우로 적재적소에 자유자재로 자신의 가면을 활용하며 살아간다.

김부장의 한마디.

"처음에는 이럴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 그런데, 영업이란 게 내 마음 같지 않고 거래처 담당자 비위도 맞춰야 하고 장난 아니거든. 괜히 다중 인격이 된 것처럼 불편하기도 했지만. 상대방을 위해서나 내 자신의 멘탈관리를 위해서... 상황과 장소를 분별해서 적절하게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매사에 마음이 편하더라고.... 나의 내면에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거래처의 비위를 맞춰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민원담당 공무원인 정주무관 또한 민원용과 직원용, 지인용과 민낯용 네 개를 들고 집을 나선다. 관공서를 방문하는 다양한 성향의 민원인들에게 여러 번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결재를 올리는 단계에서도 가능하면 팀장과 과장의 기호와 성향에 맞게끔 표정관리가 필요하다. 부지런히 오가는 지인들 간의 카톡이나 연락에서 그에 걸맞은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과 표정을 날 것 그대로 대할 때는 아무런 치장도 없는 민낯을 비로소 드러낸다.

정 주무관의 한마디.

"재수 없는 날이면 아무런 잘못 없이도 고함과 욕설을 내뱉는 민원인을 대하노라면 어찌나 화가 나던지... 이러다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치는 거 아닌가도 싶었다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악성 민원인을 대하는 얼굴 하나를 더 만들었지. 친절하지만 법과 절차에 따른 원칙적인 응대만 하고 그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 그런 생각과 태도가 자리 잡은 뒤에는 그렇게 심한 분노는 덜하더라는..."


잘 다니던 공기업을 조기 퇴직하고 작은 선술집을 하는 허사장도 저녁 장사를 위해 집을 나설 때 몇 개의 가면을 담아둔다. 단골부터 진상 손님까지 대할 수 있는 영업용 얼굴, 좋은 재료를 공급받아야 할 거래처에는 그에 걸맞은 표정, 최근 갈등이 고조된 아내와의 대면 상황에서 필요한 얼굴.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아내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사장의 한마디.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는 얼마나 고민과 후회가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냥 공기업에 있었으면 월급 받으며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찾아오고... 술 취한 취객이 힘들게 할 때면 더더욱 자괴감이 들어 견디기 힘들었죠. 그러다 보니 아내와의 사이도 안 좋아지고... 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각기 다른 캐릭터의 가면을 만들었습니다.... 이제 잘 사용해봐야죠!"



타인과의 관계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갈등과 고민 없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도 양자 모두 쉽지 않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지 않는 이상 누군가와 부단히 부대끼고 살아가는 게 우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친구관계에서 가정에서 그 장소를 불문하고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갑(甲)이나 을(乙)로 혹은 병(丙)으로도 살아가며 개인의 영혼이 감내해야 할 관계의 부담과 상처는 무한정 확대된다. 갑은 또 다른 갑에게 갑질을 당하고 을은 또 다른 을에게 갑질을 하다 보면 개인이 받는 분노와 상처 또한 지속적으로 커져간다. 우리 모두는 감정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한계적 상황을 살아간다.


사회적 관련성이 복잡해지고 공적인 역에 편입될수록 부담과 상처를 입는 이들이 많아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런 상황을 피할 수도 없다. 결국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적극적 대처법이 필요하다. 상황별로 대처 가능한 가면이나 얼굴을 준비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가면(얼굴)은 여러 개의 자아나 다중인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더더욱 위선은 아니다.


굳이 식자적 표현을 빌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가면은 페르소나의 일종이다. 페르소나란 개인이 사회생활에서 드러낼 수 있는 자신의 내면과 다른 태도나 성격이라 할 수 있겠다. 어원을 살펴봐도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사용했던 가면을 말한다. 현대적으로 변용된 개념은 이나 캐릭터 정도로 이해하면 족하겠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다른 태도를 취하더라도 우리의 자아와 전혀 다른 것일 수는 없다. 관계 속에서의 가면은 타인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속성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준비해야 할 가면(얼굴)은 상황별 캐릭터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얼굴과 사적인 친밀도에 따른 얼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는 얼굴이 그것이다. 친밀한 가족의 얼굴로 외부의 타인을 대할 수는 없다. 사회적 관계의 한계와 거리두기의 필요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복면가왕이라는 프로에서 가수는 가면을 쓰고 노래한다. 가수는 익명성을 띤 채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청중도 원래의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만, 그것이 노래와 감동을 훼손하지는 않는다. 특정한 누가 부르는가 보다 어떻게 들리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소위 가면사회의 본질이 될 수도 있겠다.


여기서 굳이 가면 뒤에 공백이라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어려운 얘기까지 끌어들일 필요도 없겠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와 투명사회의 주장이 가면사회의 이면이라는 담론까지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의 "나"라는 존재를 보호하기 위한 가면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가면극인 <변검>에서처럼 다양한 얼굴을 지닌다면 진정한 내면의 나를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몇 개의 가면을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여린 영혼을 가진 수많은 김부장들정주무관들, 허사장들의 안녕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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