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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Sep 18. 2024

7. 개인 맞춤형 생각을 주문하세요!(2)

   안대표는 짙어진 어둠처럼 취기가 올라오자 고팀장에게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최근 AI를 둘러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오늘도 보안팀에서 생각의 원천에서도 낯선 디지털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세계적인 빅테크 업체 해킹공격에서 생각의 원천도 어떤 식으로든지 공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안대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나무 자체 보안시스템의 안전성과 방어력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는 것도 덧붙였다.


   “혹시나 급성장하는 AI를 통해 인간의 통제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능력이 발전할수록 인간사회에 미치는 긍정과 부정의 영향력을 동시에 파악을 하고 대처해야 하는데... 이걸 간과하고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다 보면 중요한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죠.”


  생맥주를 즐기는 고팀장도 잔수를 더해가다 보니 얼큰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긴 머리를 한 손으로 뒤로 넘기며 조명 속에 잠긴 안대표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반쯤 남은 맥주잔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를 보면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오백 년을 넘어선 왕릉의 고요와 짙은 어둠이 주는 평온함을 느꼈다. 테이블에 양손으로 턱을 괴고 앞을 바라봤다. 매력덩어리. 자신만의 전문영역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는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이란... 저런 모양새일까 생각을 하면서 다시 술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했다. 쨍그랑. 생맥주잔은 비워져 갈수록 소리가 맑아진다. 그다음은 한잔 더. 흠뻑 빠져드는 취기는 어둠과 닮았다.


  오늘 저녁 자리는 자신이 안대표의 방을 찾아가서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던가! 고팀장도 최근 맞춤형 시스템 개편작업과 해킹문제 대응 때문에 여러모로 에너지 소비가 많았던 한 주였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생각나무이다 보니 시스템의 안전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어떤 갈증에 목이 말랐다. 팀장들 대부분이 조기 퇴근했는지 대부분 부재중이라는 표시가 떠있었다. 안대표만이 아직 회사에 있음이라는 녹색불이 켜있었다. 녹색이 빨강으로 바뀌기 전에 부랴부랴 안대표 방을 찾게 된 것이었다.


   “대표님, 그런데 생각의 원천 이전에 명상음악이나 수면프로그램이 성공했던 이유가 궁금하거든요.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수많은 음악이나 리듬이 깔려 있잖아요. 비용 없이 그냥 들어도 되는 것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유독 대표님 명상곡이나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고 유료로 다운로드되는 이유가....”


   “음.... 사실 그렇죠. 저 같은 경우에는... 자연이 제공하는 소리나 리듬도 좋지만 우리 인간의 귀나 뇌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죠. 다시 말해 그런 특별한 무언가를 만족시키는 코드가 있을 거라 추측하고 연구했죠. 분석 시스템을 만들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집중력을 강화시키거나 신경을 이완시켜 주는 특정 코드를 발견하게 된 거죠. 그 결과치를 기존의 클래식 음악이나 새로 만들어진 리듬 속에 삽입해서 더 정교한 프로그램을 만든 게 그것들이죠. 그런 분석시스템이 생각의 원천 설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그러니까 대표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타이스 명상곡 같은 리듬 속에 우리 뇌를 집중시키는 특별한 코드 같은 게 있다는 얘기죠. 작곡가들이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요. 흐음. 상당히 흥미로운 접근이었네요. 결과로 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누구나 그런 생각을 쉽게 할 수는 없잖아요. 남과 다른 생각, 한 박자 빠른 변화. 모든 게 그렇죠...”


   이러한 생성형 AI의 적극적 활용은 사람의 뇌에 미치는 각종 작용에 의미 있는 해답을 제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안대표의 뇌자극에 대한 작용기법을 뇌작용으로 변환시키는 촉매역할을 하게 된다. 생각의 원천은 최첨단 AI기술과 탁월한 뇌과학 연구 성과로 인해 다른 빅테크 업체에서 따라올 수 없는 성과와 시장 선점을 할 수 있었다.


  완전히 어둠 속에 묻힌 공원에는 적막만 남았다. 밤의 속내는 깊었고 두 사람의 대화는 더 깊어졌다. 푸덕거리며 날던 새들도 잠들었는지 사방이 고요 속에 쌓였다. 안대표와 고팀장이 머무른 자리에 존 덴버의 Today가 흘렀다. 실황공연을 녹화한 버전이라 그런지 현장음과 박수소리가 찬란하게 어우러졌다.


   Today while the blossoms

   still cling to the vine

   I’ll taste your strawberries

   I’ll drink your sweet wine

   A million tomorrows shall all pass away

   Ere I’ll forget all the joy that is mine


   맥주와 분위기에 취한 안대표가 바라보니, 고팀장은 눈을 감고 노래를 따라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고개로 리듬을 타며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마치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대표는 자신의 눈앞에서 눈을 감고 있는 긴 생머리의 여성을 보고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환한 웃음이 올라왔다. 시간이 흘러 누군가 선택이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었을 때 오늘 밤을 떠올릴 것이다.


   ‘꽃잎이 아직 덩굴에 달려 있을 동안, 그대의 열매를 맛보고 그대의 달콤한 와인을 마시겠어요.... 수많은 내일이라는 날들이 모두 지나간다 해도, 오늘 내가 느꼈던 이 기쁨은 잊지 않을 겁니다....’


   안대표는 이 순간이 달콤했다. 결코 이 평온함과 기쁨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혼자 차가운 술잔을 들었다. 창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고팀장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어디선가 훈풍이 불어왔다. 푸릇한 샴푸향이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아! 처음 봤을 때도 이 향이 났었던가...    

 


   보안을 맡고 있는 개발팀이 발칵 뒤집혔다. 생각나무 보안망에서 해킹 통로를 심어놓은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시스템 해킹이 아닌 백도어 해킹의 흔적이었다. 백도어는 통상 시스템 개발자나 운영관리자들이 개발 및 유지보수 차원에서 만들어놓기도 하나 누군가 악의적 목적으로 개설해놓기도 한다. 이것은 마치 보안시스템의 일부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시스템 보안관리자들도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었다. 개발팀은 최근 배지형 팀장 주도로 생각의 원천 능력을 빌려 시스템 보안 능력을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숨겨져 있던 비밀 통로가 새로운 보안시스템에 의해 적발된 것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처음부터 교묘하게 설계되어 심어져 있던 루트였다. 배팀장은 안대표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안대표의 방을 다급하게 노크했다.


   “대표님, 대표님, 우리 보안시스템에서 쥐구멍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주 은밀하게 숨겨져 있던 거라 상시 감시시스템에도 적발되지 않았던 걸로 보입니다. 누군가 그 백도어 통로를 통해 뭣을 빼내갔는지 아니면 우리 시스템에 위해를 가했는지 지금은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만....”


   쥐구멍이란 해킹통로인 백도어를 얘기하는 자신들만의 용어였다. 다소 심각한 내용의 보고였지만 안대표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배팀장을 자리에 앉도록 권했다. 배팀장은 누가 먼저 보고했나 싶어 뜨악한 심정이었다.


   “후훗... 배팀장님, 지금 말씀하시는 백도어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사실... 이 문제는 아무에게도 얘기를 안 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생각의 원천 설계자이면서 보안망까지 관여했었잖아요. 물론 형식적으로는 초창기 멤버들에게 보안망 설계 권한을 주었지만요. 음... 그 비밀스러운 통로는 우리 생각나무 설립 때부터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있는 뒷문이었죠. 마치 정상적인 관리자계정의 출입문처럼 보일 수도 있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시스템관리자 통로인 줄 알았었는데... 어느 날 생각의 원천이 체크를 해주더라고요. 허허허.”


   안대표의 별거 아닌듯한 얘기를 듣고는 배팀장은 더 크게 놀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문장과 단어를 신중이 고르느라 스마트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 통로가 예전부터 존재했었고, 대표님도 알고 계셨던 거라는 거죠. 하하하. 이런 황당한 스토리가.... 그런데 왜 알고 계시면서도.... 계속...”


   “하하... 그렇죠. 모르는 도둑보다 알고 있는 도둑은 감시하기가 더 쉬우니까요. 정상적인 관리자 계정으로 접근할 수 있던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는 것은 설계자들의 권한이 아니면 설정할 수 없는 문제잖아요. 배팀장님도 아시다시피... 그러니까 그 백도어도 처음부터 어느 시점까지는 정상적인 통로로 보였다는 거죠. 해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완전 폐쇄망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가지고 있던 출입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시스템이 스스로 자주 사용하지 않는 비밀통로를 검색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저한테만 귀띔을 해준 거구요. 저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죠. 그게 의문스러운 백도어인 줄 알고서는 어떤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깨졌죠.”


   안대표의 얘기를 들은 배팀장은 생각지도 않은 소름이 돋아났다. 안대표가 백도어를 알고 있는 것, 생각의 원천이 스스로 백도어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것을 설계자에게 알려준다는 것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자신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어디에 빠지지 않는 전문가이긴 하지만 눈앞의 대화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깨와 팔뚝의 오돌토돌한 소름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 그게 그런 스토리가 있었네요. 정말 전율이 이는데요. 근데 누가 그런 장난... 아니 나쁜 짓을 했을까요? 초창기 멤버라면 대표님이 대부분 잘 아는 사람들이었잖아요. 그러면, 혹시.... 지금 제가 짐작하는 그 사람인가요?”


   배팀장의 물음에 안대표는 빙그레 웃으며 팔짱을 꼈다가 다시 팔을 펴며 어깨를 으쓱했다. 짐작은 가지만 정확하지는 않다는 표시였다.


   “그래서 저도 어느 시점부터는 면밀하게 시스템 관리상황을 보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신출귀몰한 해커라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영화 속에서는 마치 유령 같은 해커들도 존재하지만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선명하지는 않더라도 발자국이 남잖아요. 그리고 내친김에 생각의 원천에 새로운 감시 추적시스템을 심어놨죠. 예전의 보안시스템에서는 생각하지 못할 획기적인 시스템인데.... 이게 애들 장난처럼 보이겠지만, 누가 우리 시스템에 백도어를 통해 들어와서 무언가 행위를 하고 나가면 같이 따라 나가서 그쪽 시스템을 역추적하는 방식입니다. 기존의 지식체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컴퓨터 보안시스템에서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 영화처럼 말이죠. 실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 식의 대응까지 가능하게 됩니다.”


   인공지능과 해킹지식에도 해박한 배팀장이었지만, 안대표의 획기적이란 표현과 추적기법을 듣고는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안대표는 생각나무 시스템을 통해 적어도 해커의 활동을 감시하고 있던 거였다. 나아가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기술적인 추적 시스템까지 마련한 것이었다.


   안대표는 뒷문과 발자국에 대한 지금까지의 경과와 자신의 생각을 배팀장에게 설명했다. 안대표는 믿을만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아는 한 전부를 말했다. 지금이 그런 경우였다. 배팀장에게 현재의 생각의 원천의 보안감시능력을 얘기해주고 해 주고 백도어 뒤처리와 관리를 맡겼다. 백도어의 존재를 알고 나면서부터 꾸준히 이를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면서 계속 드나드는 것을 감시했고, 이 백도어를 통해 오히려 그쪽 시스템에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역으로 개설해 놨다는 안대표의 말에 배팀장은 여러 번 깜짝 놀랐다.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는 담담하게 얘기하는 안대표를 쳐다봤다.


   인간 체스 대표나 프로 바둑기사를 이긴 이후부터 AI의 능력은 상상초월이었다. 정보수집이나 처리능력이 초기 AI의 능력이었다면 지금은 자기 스스로 방어능력과 더불어 공격능력까지 갖추게 된 셈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게 아니라 생각나무 원천 같은 최첨단 AI가 그렇다는 얘기다.


   배팀장은 안대표로부터 보안시스템 최고관리자 권한을 부여받았다. 배팀장은 물론 개발팀의 책임과 권한이 무거워진 것이다. 배팀장은 안대표로부터 좀 더 비밀스러운 얘기까지 들었다.


   안대표는 생각나무 원천을 설계하면서 다음 사항을 고려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생각의 원천 시스템에 침입하더라도 시스템 프로그램을 가져가거나 복사해갈 수는 없다. 통상 보안망이 허술하면 망가뜨리거나 큰 혼란을 줄 수도 있고, 튼튼한 경우에도 원하는 뭔가를 베껴서 가져갈 수는 있다. 그래서 전자에 대한 방어책도 필요하고 후자에 대한 대비책도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생각의 원천 시스템에 방어와 공격 모두 가능한 일종의 해커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 이유로 침입한 해커의 연결 통로를 따라 들어가서 그쪽 시스템에 일종의 스파이 시스템인 트로이 목마를 심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쪽 시스템에서도 바이러스로 탐지되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시스템의 일부로 읽힐 것이다.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언제든지 그 목마를 움직여서 그 시스템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스캔할 수 있다... 안대표는 배팀장에게 그 스파이 시스템에 관한 관리 권한까지 주었다. 배팀장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안대표는 AI 관련 종합연구소의 필요성까지 덧붙였다.  


   배팀장은 자신의 컴퓨터에서 안대표가 부여한 권한을 사용해서 생각의 원천에 접속했다. 개발팀 입장에서의 접속이 아니라 개발자 차원에서의 접속이었다. 가슴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지금까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화면이 열렸다. 다차원으로 연결된 회로 같은 시스템구성 요소들이 위성처럼 떠돌고 있었다. 저 위성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의 시스템 구성요소일터이고, 각각 필요한 비번이 필요할 텐데. 전문 해커 출신으로서 자신이 봐도 해킹은 쉽지 않아 보였다.


   안대표가 말한 보안시스템의 백도어를 살폈다. 얼핏 정당한 관리자 계정으로 만들어진 시스템 구성 부분으로 보였다. 분명 초기 보안설계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일 텐데. 이 백도어를 설치한 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생각나무 원천의 관리자처럼 속여 필요한 정보를 자신의 시스템으로 빼돌린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놓았다. 안대표의 치밀한 자신감이 드러난 부분이다. 모르고 당한 게 아니라 그냥 관리하며 방치한 것이다. 치명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던 까닭이다. 대신 그 이동통로를 통해 상대방의 시스템에 강력한 트로이 목마를 심어놓은 것이다. 낯선 설렘과 긴장감에 양손에 진땀이 났다. 조심스럽게 이동통로를 이동해서 상대방 시스템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디로 연결될까? 아니, 상당히 규모가 방대한 시스템인데.... 어라! 이런.... 꿈항아리... 였네. 허참. 그렇다면 그 한상훈이라는 그 사람이잖아. 내 전임자였던 그 친구가 뒷문을 만들어놓고 장난을 치고 있었군... 아하! 그래서 꿈항아리 사건 때 다들 시스템이나 운영방식이 비슷하다는 얘기들을 했었네. 그런데 이걸 대표님이 알면서도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고. 무슨 이유일까? 대표님 동생과도 친구라도 하던데. 그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배팀장은 마음속에 몇 개의 의문을 품고 새로운 해킹의 세계로 들어갔다. 한동안 잠들어있던 해커로서의 본능이 되살아났다. 십 대 때 처음 어느 국가기관의 보안시스템을 뚫었을 때 얼마나 가슴 설레었던가! 공포와 환희가 동시에 톡톡 터지는 느낌은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경지였다. 물론 결과는 대부분 허망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야생 늑대의 사냥 본능이 손과 머리를 움직였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다시 그때의 철부지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났기 때문이다. 꿈항아리 시스템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면서 안대표와 나눌 이야깃거리를 차곡차곡 기억했다. 오래간만에 키보드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쩌면 나쁜 놈과 그놈의 창조물을 발견한 흥분일지도 몰랐다. 문득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한상훈처럼 잘 나가는 친구가 왜 그랬을까? 이런 행동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능력으로 잘 살 수도 있을 텐데... 음, 뭔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한편, 개발팀장이 시스템 보안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개발팀에서는 맞춤형 시스템에 밀려드는 주문 때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이토록 다양한 요구가 있을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까지 다양한 불평불만, 불만족과 불행이 존재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다양한 요구사항을 살펴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온전하게 돌아가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쩌면 우리 사회 내부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상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반증이었다. 중2병 테라피 때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한 서버확보와 동시접속 가능회선을 확충해서 그런지 명절기차표 예매와 같은 난리법석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스템을 오픈한 지 일주일이 지나 고팀장과 민팀장이 안대표를 찾았다. 다리를 위로 들어 내지르기 동작을 연습하던 안대표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권했다. 안대표는 초등학교 때 시작한 택견을 꾸준히 연마하고 있다. 민팀장이 동작을 멈춘 안대표에게 말했다.


   “어머, 우리 대표님. 그 동작들이 택견 품새 같은 것인가요? 부드럽지만 힘이 느껴지는 게 상당해 보이는데요. 보통 전통 한복 같은 거 입고하시던데, 대표님은 지금 그 타이트한 복장에도 가능한 거 보면 고수이신 게 분명하죠? 호호홋.”


   “아! 민팀장님. 잘 아시네요. 삼십 년 가까이하다 보니 그냥 숨쉬기 운동처럼 하고는 있습니다. 허허허.”


   “저도 예전에 대표님 말씀 듣고 우리 대학생 아들한테 택견 수련 권했잖아요. 정신건강에도 호신술에도 좋다고요. 그곳 관장님한테 안대표님 성함 말씀 드리니까 우리나라에서 몇 분 안 되는 최고수시라고 그랬다고 합니다. 어쩜 이런 외모에서...”


   “오, 아드님은 잘하셨네요. 그 관장님이 저를 잘 봐주셔서 그런가 보네요. 하하... 요새 팀장님들 맞춤형 시스템 오픈 때문에 바쁘셨죠. 조금 전에도 기획팀장님과 개발팀장님이 왔다 가셨거든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은데요. AI가 제공해 주는 문제해결 테라피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서는 것 같아 정말 다행입니다. 민팀장님의 카피가 큰 몫을 해내셨습니다... 하하하.”


   “무슨 말씀을요. 우리 생각나무 가족들이 합심해서 기획하고 개발하고... 무엇보다 생각의 원천 그 친구가 큰 역할을 해서 그런 거죠. 저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호호호.”


   민팀장은 안대표의 칭찬이 쑥스러운 듯 교과서적인 대답을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고팀장도 박수까지 치며 크게 웃었다. 눈치 빠른 안팀장은 미혼인 두 사람이 마주 보도록 약간 비껴 앉았다. 요새 두 사람의 알콩달콩 스토리는 생각나무 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서로 싸우지도 않고 정이 들었다고 할까.... 그런 미담의 주인공들이 되었다는 걸 본인들은 알고 있을까? 직원들의 속삭이는 소리를 생각하며 민팀장은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마치 막내 동생이 연애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화하며 두 사람의 눈길이 서로 마주칠 때는 보이지 않는 천둥 번개가 오갔다. 그런 까닭인지 고팀장의 말수가 줄어있었다. 민팀장은 오전에 마케팅팀에서 나눴던 주제를 꺼냈다.


   “대표님, 우리 맞춤형 주문시스템의 성공적인 런칭에 언론사에서 인터뷰가 쇄도하고 있네요. 우리 팀원들이 알아서 보도 자료를 내주기도 하지만 대표님이 말씀하실 부분도 필요해서요. 어떻게 기자들과 일정을 잡아볼까요? 일부 TV 공중파에서는 마케팅 담당자들보다 대표님을 뵙기를 희망하기도 하구요....”


   “뭐 그러시죠. 잘하고 계셔서 제가 끼어들 자리가 없기는 하지만, 상징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으면 시간을 내겠습니다. 팀장님께서 자리를 마련해 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대한신문에서 우리 생각나무 시스템이 소비자를 현혹하고 기망하는 상품을 판매하고, 그게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썼거든요. 제가 직접 기자와 그쪽 데스크에 항의를 했습니다. 그렇게 말할만한 근거가 있냐고요....”


   대한신문이란 단어가 나오자 안대표와 고팀장은 놀란 표정으로 민팀장을 바라봤다. 대한신문은 보수정부와 재벌기업들과 친화적인 대표적인 보수일간지였다. 두 사람의 반응을 확인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랬더니... 이 친구 하는 말이. 가관이었어요. 신뢰할만한 곳에서 제보가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다시 물었죠. 당신들이 신뢰하는 그곳이 어디냐? 그 신뢰성은 객관적이고 과학적 신뢰를 말하는 것이냐 아니면 당신들 신문사의 신념에 따른 신뢰를 말하는 것이냐... 이렇게 물었죠. 그랬더니 뭐 하고 한지 아세요? 그 친구들 맨날 하는 얘기 있잖아요. 기자들의 전가의 보도인 취재원비닉권. 취재원 보호를 위해 말할 수 없다고... 그래서 제가 웃으며 말했죠. 진실을 말하는 게 두려워서 비밀로 하는 거냐 아니면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게 쪽팔려서 그러는 거냐... 했더니. 전화를 일방적으로 뚝 끊더라고요. 별것도 아닌 나쁜 자식들이...”


   “그쵸. 진짜로 별것도 아닌 나쁜 기레기 새끼들이...”


   고팀장의 애교 섞인 말까지 보태지자... 하하하. 호호호. 큰 웃음이 터졌다. 민팀장의 단호한 대처는 두 사람의 더 큰 웃음을 자아냈다. 웃음 뒤끝에 고팀장은 약간은 근심 어린 얼굴이었으나, 안대표는 그럴 수도 있다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음... 언론에서 우리 생각나무에 진위를 확인하는 절차도 없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추측성 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분명히 의도가 있을 거예요. 그냥 누군가의 부탁이나 강요에 의해 기사를 던지는 거죠. 책상 위에 앉아서 건너온 메모만 보고 기사를 써내려 가는 거죠. 아니면 자기들 AI한테 부탁하든지요. 제가 한번 내막을 알아보죠. 이런 사안은 무대응도 좋겠지만, 그냥 놔두면 일을 더 크게 만들 수도 있거든요. 민팀장님이 조금 있다가 저한테 관련 자료만 전달해 주세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광고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언론계나 기자들 속성을 알만큼은 알거든요. 좋은 기사를 고민하고 탐색해서 쓰는 기자들도 많지만 하이에나 같은 친구들도 종종 있거든요. 그런 기자들이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세요? 정확한 근거를 대고 따지는 사람이나 소송을 두려워하죠... 빈약한 근거도 그렇거니와 대부분이 가난한 샐러리맨들이잖아요.”


   로펌에서 잔뼈가 굵은 고팀장도 무슨 감을 잡았는지 걱정이 풀린 얼굴을 하고서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추측성 기사들이나 제보에 의한 일방적 기사는 상대방에게 스크래치를 내는 걸 목적으로 하거든요. 자신들의 오보나 잘못이 밝혀져도 언론사는 기껏해야 우리는 몰랐다, 반론보도를 청구하라거나 정정보도까지는 해주겠다. 뭐 이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게 언론의 민낯이잖아요. 하두 많은 사안들이 있어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드네요. 이번건도 딱 감이 오는데요. 그 기사를 통해 누가 이익을 보는지만 살펴보면 기자들의 의도나 기사의 의도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아마추어 탐정놀이 한번 해볼까요? 히히히.”


   민팀장이 옳거니 좋다 하는 표정으로 고팀장을 바라봤다. 안대표도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언론에 대한 법적인 대응방법과 현실적인 대처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나눴다. 맞춤형 주문시스템의 외국어 버전 출시문제와 각 팀의 인원확충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았다.


   안대표는 두 사람이 돌아간 뒤 다시 몇 가지 정보를 검색하고 분석했다. 민팀장으로부터 자료를 받고 나서는 생각의 원천의 어떤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그 기사를 쓴 대한신문의 서버에 접속하고 담당기자의 기사노트를 열었다. 그 기자가 쓴 수년간의 기사를 일정한 기준으로 필터링하고 문체를 확인하고 문장과 단어를 비교분석했다. 물론 안대표가 직접 하지는 않았다. 생각의 원천이 안대표의 질문대로 움직여서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결과를 내놓았다. 뛰어난 정보 분석가들이 합동으로 해도 몇 날 며칠을 해야 할 일을 생각의 원천은 단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에 해냈다. 상호대화형 AI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생각의 원천이 가진 특별한 투시 능력의 장점을 활용한 결과였다.


   ‘흐음. 내 생각이 맞았군.... 그럴 줄은 알았지만... 이 친구들이 이렇게 했단 말이지. 기자들이 강한 척 하지만 그렇다고 슈퍼 갑은 아니니까..... 이 친구의 친구들이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볼까!’



   안대표는 인간관계도 시스템설계와 같다고 생각했다. 둘 다 네트워크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인풋과 아웃풋도 명확하다. 양자는 고구마 넝쿨 같은 속성을 가진다. 점조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네트워킹도 결국 거미줄의 숙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충 보면 보이지 않고 연결되지 않아 보이지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연결된다. 그게 네트워크와 인관관계가 지닌 본질이다. 그 깊숙한 곳에 욕망과 돈이 흐른다. 더 높은 곳에서 더 깊게 들여다보면 모두 보인다. 안대표도 생각의 원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먼저 대상 기자를 스캔 분석한다. 그 기자의 각종 미팅과 네트워킹을 쫓는다. 업무일지와 이메일, 각종 SNS계정과 본인과 주변 인물들의 은행계좌를 살핀다. 데스크의 인맥을 들여다보고 그의 동선을 탐색한다. 불법감청은 할 수 없지만, 그들이 투명인간이 아닌 이상 하루에 적어도 300번 이상 다양한 CCTV에 노출된다. 쪼개진 동선을 모으면 하루가 된다. 그들만 모를 뿐이다. 소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는 힘 있는 자들의 오만과 자만도 한몫 거든다. 그들 대부분은 몇 개의 전화번호를 가진다. 하지만 휴대폰을 몇 개를 써서 자신을 감추려 해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지 기록을 남긴다. 먹고 마시는 공간과 대화 나누고 잠자는 공간 또한 추적을 피할 수 없다. 허접한 아마추어들이 사용하는 스파이앱은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다. 사생활을 훔쳐보는 탐정놀이 할 때나 사용한다.


   어쨌든 디지털 세상에서 비밀은 존재하기 힘든 법이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머무르지 않는 이상 그렇다. 의도를 드러낸 순간 어떤 기호로 여러 흔적으로 모두 자취를 남긴다. 그들이 남긴 흔적과 자취를 보통의 인간은 모을 수 없지만, 디지털세계의 강자들은 각종 정보 부스러기를 쉽게 모으고 더 쉽고 섬세하게 분석한다. 이를 퍼즐로 맞추면 24시간 동안의 어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완성된다. 그것이 진실이다.


   안대표는 자신의 분석결과를 여러 팀장들과 공유했다. 고팀장은 변호사로서 언론사와 기자에게 생각나무의 명예훼손과 영업방해에 대한 혐의를 추궁하는 경고 문서를 보냈다. 동시에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청구를 할 뜻을 슬며시 내비쳤다. 고팀장이 경찰이나 검찰에 고소하자는 의견을 말했으나, 안대표는 지지부진한 경찰을 믿을 수 없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민팀장은 우호적인 언론을 통해 과학적 근거 없는 기사를 비판하고, AI 생태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음해 세력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배팀장에게는 생각의 원천을 통한 별도의 행동을 주문했다. 생각나무에서는 예의 없는 기사에 대해 의도를 모른 체하며 상식적인 선에서 대응만 했다.      


   생각나무 앱은 한국어버전 출시에 맞춰 다양한 외국어 버전 맞춤형 시스템까지 개설했다. 생각의 원천은 주요 10개 언어와 소수 언어에 대해 즉시 통번역이 가능한 번역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어서 웬만한 질문에 답변과 상품판매가 가능하다. 명상 수면 프로그램이나 테라피 제품도 그랬듯이 이 번역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언어로 만들어진 상품을 즉시 구매할 수 있다. 생각나무 앱의 해외버전에 다국적 언어로 맞춤형 시스템 출시를 알렸다. 세상의 불행과 불만은 저 멀리 태곳적부터 존재했다는 걸 증명하듯 수많은 주문이 밀려들었다.


   기획팀은 생각의 원천을 통해 맞춤형 주문시스템이 잘 정착되는지를 실시간 모니터링 한다. 고객게시판과 상담게시판에 각종 소비자의 불평불만을 계속 들여다보며 시스템의 잘 작동되고 고객들에게 만족을 주는지를 살폈다. 기획팀의 피드백은 개발팀을 비롯한 생각나무 전체 구성원에게 바로 공지된다. 중요한 제안이나 주요 고객 불만사항에 대해서는 수시로 TF를 가동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기획팀은 이번기회에 의미 있는 분석을 해보기로 했다. 국내와 해외의 각종 맞춤형 데이터를 분석해서 현대인들의 불평불만과 삶의 만족도와 지향성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했다. 이런 데이터는 향후 생각나무의 상품개발과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 작업은 상당기간 동안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이었다. 생각나무가 중시하는 사회적 책임과 같은 맥락이었다.

  안대표가 대한일보의 기사와 그 배후를 궁금해하고 있을 때 민팀장이 인터뷰 일정 때문에 찾아왔다.


  “대표님, 기자들 독촉이 심한데요. 요새 AI 관련해서 이슈도 많아서....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대표님과 인터뷰 원하는 기자들과 집단으로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잡아봤습니다. 기자들 요청서에 의하면 AI의 미래상, 인간과 AI의 관계정립, AI 발전의 위험성에 관한 질문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대표님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쪽 분야의 상징적인 존재이시다 보니까... 우리 회사 관련 이슈 말고도 일반적으로 궁금한 사항들이 많은가 봐요. 이번 주 목요일 정도 괜찮으시죠. 시간대는 어떻게 할까요?”


   안대표는 자신의 일정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목요일 좋습니다. 오후시간에 우리 회사 카페도 좋고, 아니면 가볍게 생맥주 마시면서 얘기하는 것도 괜찮구요. 한번 기자 분들에게 의향을 물어보시고 정하시죠. 그날은 온종일 시간을 비워놓겠습니다. 우리 쪽 동석자는 저하고 팀장님하고 고팀장까지 함께 하시죠.”


  고팀장까지 함께 하자는 말에 민팀장은 속에서 잔잔한 미소가 흘러갔다. 두 사람이 알콩달콩 애정을 쌓아 의미 있는 결과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두 사람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며 즐거운 입방아가 속닥속닥 들리곤 했다.      



   목요일 저녁 7시. 선정릉 옆에 있는 아담한 호프집 2층이 왁자지껄했다. 기자들과 간담회나 인터뷰 명목이었으나 분위기는 친구들 모임처럼 화기애애했다. 이 집은 안대표가 자주 애용하는 집이어서 오늘은 2층을 통째로 빌렸다.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의 기자들 이십여 명이 모였고, 생각나무에서는 안대표를 비롯한 팀장들 전원이 함께 했다. 이런 기회를 적극적인 회사 홍보 수단으로 삼자는 민팀장의 제안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생맥주를 한잔씩 마신 터라 웃음꽃이 피었다. 오늘따라 선정릉을 넘어오는 저녁노을이 짙고 고왔다. 테헤란로의 고층빌딩과 도심 속 왕릉이 모순적으로 잘 어우러진 풍경이 되었다. 정치와 날씨, 선정릉과 삼성동 맛집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다 AI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다들 귀를 쫑긋했다.


   안대표와 배팀장이 번갈아가며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기자들은 최근 급격히 발전하는 AI 생태계와 인간의 미래에 관심과 우려를 보였다. AI의 미래는 인간의 자유와 결부되고 인류문명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될 것이라는 말에 기자들은 잔을 높게 들었다. AI가 가져올 미래는 어떨까 하는 질문에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이 있어서 진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모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자튀김과 닭날개 구이를 입에 물고서도 서로 묻고 답했다. 맥주잔에 거품이 흘러넘쳐도 반짝이는 눈망울 속에서 서로 개의치 않았다. AI에게 인간과 같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위험성에 대한 질문에는 인간의 근본적 이익과 결부되는가와 통제수단이 존재하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대답에는 다들 진지하게 술을 들이켰다. 어느 일간지 기자가 안대표에게 건배를 청하며 물었다.


   “안대표님, 만약에요, AI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한 존재가 되면 어떡하죠? 혹시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존재할까요?”


   안대표는 선정릉의 깊은 어둠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둠의 색을 알 수 없는 숲 속에서 딱따구리 소리가 들렸다. 딱딱 따다닥....


   “아,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요. 음... 재빨리 제어판 중간에 있는 빨간 버튼을 누르거나 전원을 꺼버리면 됩니다.”


   귀를 쫑긋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 사이에 한꺼번에 폭소가 터졌다. 세계적인 AI 전문가의 입에서 뭔가 대단한 답을 바라지 않았던가! 버튼을 누르라고요. 전원을 끄라고요. 푸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큰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선정릉의 고요 사이로 퍼져나갔다. 안대표의 재치 있으면서 위트 있는 답변에 모두에게 생맥주 거품이 터지듯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떤 이들은 테이블 아래에 있는 자신의 배꼽을 찾느라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저런 엉뚱한 구석이 있는 안대표를 바라보며 고팀장과 민팀장은 조용히 잔을 들어 건배했다. 언니, 저 남자 매력 있죠? 그러네! 이런 눈웃음이 오갔다. 수많은 별들이 남 모르게 윙크하는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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