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째_이테로델라베가->빌라카자(27.5Km)

카미노 데 산티아고

by 로카
20130323 (6)_santiago de compostela.jpg 오늘 나에게로 온 선물. 페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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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카자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갑자기 길가에 트럭이 한대 선다. 한 할아버지가 껍질을 벗기지 않은 아몬드 바

구니와 망치를 들고 내린다. 그리고 자기 소개를 한다. 페페할아버지. 이미 산티아고 순례를 했던 분. 카미노 위의 순례자들을 축복하기 위해 아몬드며 사탕을 준비해 나누어주고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길 옆에 벚꽃동산을 만들고, 벚꽃나무를 깎아 남자순례자(필레그레노), 여자순례자(필레그레나)의 조각상을 만들고 계신 분.


할아버지는 호세에게 아몬드를 까라고 망치를 내주시고 다짜고짜 내 손을 잡더니 동산으로 안내한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호세에게 "따라가도 괜찮아?"라고 눈짓을 보내니, 괜찮단다. 그리고는 자신이 조각한 순례자 동상을 보여주며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하신다. 그 눈 속에서 페페할아버지의 삶,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의 희열, 그리고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가지 못하여 이는 그리움이 그대로 보였다.


나는 주책없이 다시 눈물이 났다. 그러자 페페할아버지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서로의 눈물을 보았다. "할아버지 제가 산티아고 대성당에 가면 할아버지를 위해 꼭 기도할게요." 그게 할아버지가 가장 듣고 싶으신 말 같았다. 할아버지는 너무 고맙다며가 아몬드며, 사탕이며 쿠키를 자꾸만 주신다. 나는 사양 않고 다 받아왔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주신 아몬드는 부활절에 크루즈 데 페로(십자가 언덕)를 넘으며 십자가 언덕에, 미리앵과 라우라가 준 초와 내 사진과 함께 내려놓았다.


내가 오기 전 페페할아버지는 벚꽃동산에 안 계셨고, 내가 있는 동안 다른 순례자들은 그냥 지나쳤지만 나는 페페할아버지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고 그래서 기분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페페할아버지는 나를 위해 준비된 오늘의 선물이었다. 우리가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도 진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하나의 신을 섬긴다는 것. 너무 굉장한 일이다. 페페할아버지는 호세에게 나를 목적지까지 안전히 데려다 주라는 임무를 맡기고서야 우리를 보내주셨다.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는 내가 웃긴지 호세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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