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째_빌라카자->레디고스(22Km)

카미노 데 산티아고

by 로카
20130324 (2)_santiago de compostela.jpg Respect of Nature 육체적 고통이 심한 구간에 항상 쓰여 있던 푯말

아... 어제 봉사자 안나의 말을 흘려 들은 게 후회가 된다. 오늘 걷는 길 중 17Km 구간 동안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이 걸은 카미노 중 가장 고통스럽던 구간 중 하나라고... 나는 평지인데 뭐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벌써 몇 번이나 산을 탓는데...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몇몇 순례자들이 나를 지나쳐간 이후로 길 위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먹을 것도 챙기지 않은데다, 비바람까지 몰아쳐 그동안의 여정 중 가장 고통스럽다. 오도가도 못하게 중간쯤 왔을 때는 발이 너무 아파.. 한 발을 질질 끌고 걸어야만 했다.

핸드폰도 일시 정지시키고 왔기 때문에 전화를 걸 수도, 산이 아니기 때문에 911 구조 전화도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걸어야 한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 길에서 잠을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먹은 건 사과 한 개 뿐인데 벌써 오후 세시이다. 이런 육체적 고통 앞에서는 눈물도 안 난다. 그냥 하하하... 웃으며 이게 내가 오늘 반드시 가야 하는 카미노란 인생이구나 하며 걸을 수밖에...
Respect of Nature 육체적 고통이 심한 구간에 항상 쓰여 있던 푯말
나는 오늘 17Km의 길, 바람, 비를 존중하기로 했다.

4시에 마을에 도착했다. 도착한 마을에 알베르게가 있었지만 나는 머물고 싶지 않아 bar에 들러 샌드위치, 올리브, 와인 한잔으로 늦은 점심만 먹고 마지막 힘을 내어 6.5Km를 더 걸었다. 오늘 머물 레디고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이전 마을에서 넉다운된 친구들은 오늘로서 내가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비록 빨리 걸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조금씩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어 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 얻은 교훈은 내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길 위에서 여러 가지 난관을 만나지만
그것들을 존중(Respect)하며 나의 속도로 가겠다는 것
그리고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기 위해
과거와 같이 마음을 닫지는 않겠다는 것...

길 위에서 이 날의 17Km를 되뇌며 정말 못할게 없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도 했다.

잘했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나에게 많이 칭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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