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사준 이문열 작가님의 <삼국지> 시리즈 10권을 읽고 삼국지 세계에 푹 빠졌다. 조조가 세운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나라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군상의 이야기, 전투등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초등학교 시절에 만화로 먼저 접했던 내용을 책을 통해 자세하게 알게 되니 더욱 더 깊게 빠지게 되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나는 그 속의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사회의 다양성에 대해 배웠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있을 수 있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같은 사람은 없다. 삼국지 안에 나오는 인물들도 같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부자 아버지의 후원 아래 자신이 가진 능력과 야망을 최대한 활용하여 결국 삼국 최고의 패권을 차지한 조조, 왕족의 후예지만 밑바닥을 전전하다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예와 인을 태도로 결국 삼국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유비, 아버지와 형이 일구어놓은 왕국을 끝까지 지키는 손권등 나오는 군주들도 하나같이 장단점이 있다.
자기를 믿어준 유비를 위해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의형제 관우와 장비를 비롯하여 천재 지략가 공명 제갈량과 우직한 장군 자룡 조운, 노장 황충과 결국 촉을 배반하는 위연등 누구나 그렇지만 나도 어릴때는 유비가 있는 촉을 가장 좋아했다. 그만큼 영웅 스토리를 엮어가는 서사적 구조에 유비만한 주인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대치하는 조조는 처음부터 엄청난 권력과 물량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나갔기 때문에 사실 소설의 재미로 볼 때 벌써 끝판왕 분위기다. 그런 조조를 유비가 밀리면서 결국 최후에 대등하게 맞서는 내용들이 카타르시스를 충분히 느끼게 해준다. 그에 반해 오나라는 늘 조연이다. 적벽대전을 위해 유비는 제갈량을 오로 보내 연합을 하게 된다. 그런 오에도 주유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와서 한동안 짧게나마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관우와 장비가 죽고 그에 따른 충격으로 유비도 죽으면서 제갈량에게 아들과 촉의 미래를 부탁한다. 제갈량과 사마의의 지략대결이 삼국지 후반부의 중요 포인트였다. 제갈량도 죽고 강유가 촉을 위해 사력을 다하지만 결국 사마의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다지면서 그 파란만장한 서사도 막을 내린다.
내가 더 삼국지에 빠지게 된 하나의 요소가 게임도 있었다. 일본 코에이사에서 나온 삼국지를 배경으로 한 시뮬레이션 게임과 유비가 사마의까지 쳐부순다는 스토리를 가진 <천지를 먹다>라는 롤플레잉 게임을 하면서 더 열광했다. 게임을 하면서 나는 삼국지에 나온 그 수많은 인물의 성격과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밤새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나서 한동안 삼국지와 멀어졌지만 어릴 때 보면서 느꼈던 점들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다시 한번 삼국지를 읽어볼 타이밍이 된 것 같다. 불혹이 되어 읽는 삼국지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인생의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기대해 본다.
“세상이 나를 저버릴지언정 내가 먼저 세상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진궁을 죽이고 외쳤던 조조의 말처럼 나도 내가 먼저 세상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