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쉴 틈이 없네
“또 밤새야 해요?”
“급박하게 제안서를 제출해야 해요.”
9년전 다녔던 도시계획 엔지니어링 회사는 진행하는 프로젝트 외에 일을 따기 위해 제안서를 많이 써야 했다. 낮에는 진행 프로젝트 도서 작성, 회의 참석, 공무원과의 협의 등으로 바쁘다 보니 제안서를 작성할 시간이 밤시간 밖에 없었다.
3개월 정도를 주말도 없이 일만했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머리가 돌아가지 않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오늘도 어제와 다르지 않는 같은 일상의 반복이 싫어졌다. 쉬고만 싶었다. 오늘 할 일이 산더미인데, 모든 게 귀찮아졌다. 말로만 듣던 번아웃이 온 것이다. 결국 심신이 지친 어느 날 아침 일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회사에 가기 싫어서 일부러 안 일어났을지 모른다.
상사에게 아프다고 하고 하루종일 잤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는 것도 귀찮아서 한 끼 먹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20시간을 넘게 잤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컨디션이 좋다. 회사에 출근하니 팀원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과장 직급이다 보니 다른 직원보다 일이 많았다. 자리에 다시 앉았는데, 갑자기 한숨이 밀려온다. 일도 많지만 오늘은 또 언제 퇴근할지 아니 집에 못갈지도 모르겠다. 정말 쉴틈이 없네
* 결국 사표를 내다
일이 바쁜 것까지는 이해했는데,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회사 분위기 때문에 힘들었다. 3개월 동안 수많은 밤샘과 새벽 퇴근을 하면서 제안서를 완성했다. 제안서를 제출하고 집에 돌아와 내리 12시간을 넘게 잤다. 며칠 후 제안서 당선 결과가 나왔지만 떨어졌다. 사유는 상대 회사보다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경영진 측에서 어떻게 작업했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한마디한다. 당연히 성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힘이 빠졌다.
일을 따지 못했으니 다른 프로젝트 제안서를 쓰라고 했다. 이번 건은 기간이 2개월이다. 도저히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하기 싫었다. 내일부터 당장 시작하라는 이야기에 참을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상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번 제안서 건은 빼달라고. 기존 진행 프로젝트 일도 너무 많은데, 이것까지 병행하는 건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경영진과 상의해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람이 없으니 안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상사에게 사직서를 냈다. 더 이상 지쳐서 못하겠으니 나가겠다고 말하면서.
* 비워야 산다
인수인계를 2주 정도 하고 나왔다. 그 사이에 운이 좋게도 다른 회사로 바로 이직할 수 있었다. 옮기는 회사는 작은 시행사였는데, 9시부터 6시까지 정시근무만 하면 되었다. 야근도 없고 제안서를 쓰는 업무도 없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원했는데, 다행이었다.
인수인계하는 2주는 야근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을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서 회포를 풀었다.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비우니까 한결 편해졌다. 다시 무엇인가를 채우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들었다. 확실히 삶의 질도 올라가고 행복했다.
주변을 봐도 24시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간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시작했지만, 결국 쳇바퀴 도는 반복된 일상에 지쳐간다. 주객이 전도되어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탈이 나고 번아웃에 걸리게 된다. 결국 불행한 인생의 구렁텅이로 빠진 꼴이다.
현재 자신이 너무 지쳐서 번아웃 상태라고 느낀다면 일단 멈추고 쉬자. 천천히 나를 돌아보면서 내려놓고 지친 심신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 비워내지 못하고 계속 채우기만 하다 보니 과부하가 걸려 더 이상 작동을 못한 것이다. 행복하고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잘 비워내야 한다. 요새 다시 나도 번아웃이 오는 듯하다. 잠시 눈을 감고 비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워야 또 채울 수 있다. 오늘부터 하나씩 비움을 통해 행복한 인생을 만들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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