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5년전 1996년 12월은 나에겐 악몽의 달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수험생이었던 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망쳤다. 시험 직전에 봤던 모의고사에서 목표했던 점수가 나와서 이젠 진짜 시험만 잘 치르면 되겠다고 다짐했다. 언어 영역, 외국어 영역, 사회·과학탐구 영역은 잘 본 듯 한데, 수리 영역(수학)의 답을 답안지에 밀려쓴 것 같았다. 시험을 마치고 멍해서 확실하지 않았다. 긴가민가했다. 지금까지 시험보면서 단 한번도 밀려쓴 적이 없었다. 분명히 제대로 답안지에 마킹했을 것이라 믿었다.
한 달동안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적을 바랬다. 12월에 결과가 나왔지만 기적은 없었다. 수리 영역의 답을 밀려 쓴 게 분명했다. 딱 두 문제만 맞았다. 실제 시험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다. 다시 재수하기 싫어서 점수에 맞추어 대학에 진학했다. 그 뒤로 기적을 믿은 적은 없다.
12월 16일은 내 생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생일도 365일 중의 하루라고 여긴다. 그래도 가족과 지인들의 많은 축하를 받으니 기분이 좋다. 이런 기쁜 날에 한 뉴스 소식을 보고 좀 마음이 아팠다. 개그맨 김철민이 폐암으로 2년 반동안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다. 2019년 여름 폐암 4기를 판정받은 그는 살기 위해 구충제 복용도 감행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암을 극복하고 다시 살고 싶은 기적을 스스로 바라면서 말이다. 그의 용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바랬다. 나도 같이 기도했다. 차도도 있었지만 결국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나쁜 일이 일어나거나 뭔가를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을 때 간절하게 기적을 바라면서 기도한다. 그런데 막상 보면 그 기적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고 피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그 기적을 바랄 뿐이지 아무것도 행동에 옮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잘되겠지 하며 막연한 기대만 하다보니 잘 찾아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돌아보면 기적은 우리 주위에 항상 있다. 즉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수리영역 답안을 밀려 써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른 영역에서 점수를 잘 받았으니 재수하지 않고 진학한 것 자체가 기적이다. 암이 완치가 되어 정말 기적을 바라고 싶었지만, 유명을 달리하기 전 지금까지 이렇게 버틴 것 자체가 기적이고 사랑이었다는 개그맨 김철민의 멘트가 심금을 울린다. 삼가 그의 명복을 같이 빌어본다.
인생의 기적을 만드는 방법은 특별한 게 없다. 아인슈타인의 명언처럼 “세상을 사는 방법 은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다. 숨쉬고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이다. 지금 이렇게 부족한 글을 쓰는 것도 기적이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타이르고 화를 내는 것도 기적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지금에 충실하다 보면 그것이 쌓여 자신의 인생에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근사하게 펼쳐질 것이다. 오늘 하루도 기적처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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