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에 알고 지내던 전 모임 선배가 있다. 부동산으로 많은 자산을 가진 그는 항상 위풍당당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에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넘쳐났다. 금수저가 아니라 전형적인 자수성가 스타일로 어떻게 그 많은 부를 일구었는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 가난한 게 너무 싫어서 늘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궁리했다고 한다.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남들이 힘들어 하지 않는 분야를 찾기 시작했다. 그 분야에서 10년 이상을 공부하면서 직접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 성실함과 꼼꼼함이 장점이었던 그는 고객들의 입소문으로 사업이 번창하여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것을 다시 부동산에 투자했더니 수십억의 자산가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승자가 된 것이다.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었으니 말이다.
그랬던 그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젠 자신은 인생에서 더 이룰 게 없다고 자만하기 시작했다. 돈이나 권력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되는 게 사람이라고 하는데, 선배도 점점 기고만장 해져갔다. 봉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잘 베풀던 사람이 자신의 돈을 아까워 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우습게 보고 무시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 나도 변해가는 그의 모습에 실망하고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며칠 전 퇴근길이다. 모르는 번호가 스마트폰 창에 뜬다. 원래 모르는 번호를 잘 받지 않지만, 그날따라 누구인지 궁금했는지 받았다.
“여보세요?”
“오랜만이다. 상열아.”
“누구시죠?”
“나 00야. 정말 오랜만에 연락했네.”
“아, 선배님.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지?”
“네. 그럭저럭 직장 다니며 지냅니다. 무슨 일이신지?”
12년만이다. 내 번호는 바뀌지 않았으니 전화를 한 듯 하다.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사실 반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끊기 뭐해 대화를 이어나갔다.
“돈 좀 빌려줄 수 있냐? 미안하다. 연락할 때가 없다보니.”
“죄송합니다. 저도 모아놓은 것도 없고, 원래 돈 거래는 안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 동안 자신만만하게 살았던 선배는 도박과 유흥에 빠지고, 사기까지 당하면서 그동안 모아놓은 자산을 모두 탕진했다고 한다. 우연히 네이버에서 내가 낸 책 소식을 보고 나에 대해 검색을 한 모양이다. 책 출간 및 강의도 하는 모습을 내 블로그에서 봤다고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고 생각되어 연락했다고 하는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착잡했다.
월급이 밀리면서 대출을 받으면서 생활했던 30대 초반의 나는 그에게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자문을 구했는데. 시간이 흘러 오히려 그 선배가 나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모습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했다. 단호하게 나는 선배처럼 큰 돈을 번 적도 없고, 빌려줄 돈도 없다고 말했다. 아마 그 전에 선배가 변하지 않았다면 생각을 좀 더 해볼 수 있을텐데 죄송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끊었다. 끊기 전에 선배의 말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미안하다. 그래도 나를 멘토로 생각해줬는데 실망만 시켜서. 잘 지내라.”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인생에 있어서 정말 승자나 패자는 영원하지 않다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느꼈다. 항상 좋을 수만 없다.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지도 않는 것이 인생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것일뿐. 선배가 보기에는 지금의 내가 승자처럼 보였나 보다. 12년전의 선배도 내가 보기에는 승자였는데.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의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너무 잘 나간다고 기고만장하지 말자. 또 일이 정말 잘 풀리지 않는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엘리너 루스벨트의 “패배보다 승리 때문에 몰락하는 사람이 더 많다.”라는 말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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