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보는 내신 성적은 좋았지만 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는 늘 중위권에 머물렀다. 암기력에 능했던 나는 외우는 시험은 자신이 있었지만 응용과 생각을 요하는 시험에는 늘 약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학생때는 성적 스트레스가 어떤 것보다도 심하다. 예민한 성격이라 성적이 떨어지면 그 날은 하루종일 우울한 기분으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보니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라는 병을 달고 살았다. 조금만 신경쓰면 배가 아파 화장실로 직행하곤 했다. 수능 모의고사를 본 날이나 성적이 나온 날은 하루에 10번 정도를 들락날락 했으니 그 정도가 심했다.
성적이 떨어진 걸 집에 가서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 고민에 또 머리가 아팠다. 비단 성적 문제가 아니라 20대 후반까지 나는 정말 쓸데없는 걱정으로 가끔 예민하게 군 적이 많았다. 성적표를 몰래 가지고 있기도 했다. 어느 날은 솔직히 말했다가 아버지에게 엄청 혼나다가 대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학창시절에는 수능성적이 인생의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성적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안타깝다.
대학 저학년 시절은 군대 가기 전까지 신나게 놀다가 입대했다. 입대하고 나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유와 계급 사회에 처음에는 또 그게 힘들었다. 상병 달고 나서도 막내생활을 계속했던 나는 일병때까지 고참들에게 온갖 욕설과 구타등을 참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상병 진급 후 그래도 조금은 견딜만해지니 그 고참들이 몇 달 사이로 제대했다. 순식간에 최선임이 되고 나서 제대할때까지 편하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입대하고 1년이 지난 어느 시점까진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아무렇지 않았다.
제대 후에는 취업과 앞으로 뭘하고 살아야지 또 걱정되어 복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나 취업에는 번번히 실패하다가 전공을 살려 작은 설계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취업 준비때 너무 많이 서류와 면접에서 탈락하니 그 시절은 그것으로 너무 힘들었으나, 막상 취업하니 또 일 적응하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나이가 들어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간 그 나이마다 지독하게 힘든 시절이 있었다. 남들보다 좀 예민하게 구는 성격도 있어서 부정적인 마음으로 매 순간을 걱정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정말 죽을만큼 힘들어서 다 버리고 싶은 순간이 많지만, 인생은 그 순간순간이 대부분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나이가 들어 인생을 알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갚아야 할 대출금, 먹고 살아야 할 문제, 앞으로 직장생활을 더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불안감... 오히려 지금이 더 내가 처한 상황이 어린시절이나 젊은시절보다 힘든 순간이 많지만 마음이 그렇게 무겁지 않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힘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시간아 흘러라 흘러 주문을 외우면서 견뎠나 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지난 과거를 돌아다보면 또 아무렇지 않다. 스스로 초연해지는 게 신기할 뿐이다.
앞으로 살면서도 힘든 순간들은 또 올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순간순간 또 견디면서 사는 게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