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방문을 열어보니 9살 둘째 아이가 받아쓰기 숙제를 하고 있다. 아들의 인상은 좋지 않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느낌이다.
“잘 쓰고 있네. 받아쓰기 재미있지?”
“아빠, 재미없어. 쓰기 싫어. 이거 다 언제 써!”
불평을 터뜨린다. 쓰다가 글자 하나가 틀렸는지 짜증낸다. 글자를 지워야 하는데 지우개가 보이지 않는다.
“아빠! 지우개가 못 봤어? 찾아줘.”
“네 필통에 있는지 확인해봐!”
“없어. 없다고!”
내가 직접 아들의 필통을 열어본다. 정말 지우개가 없다. 내 책상 서랍 속에 있는 지우개를 하나 꺼내어 건네 주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아들은 지우개로 다시 글자를 지우고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인생을 살면서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먼저 인지하고 조심했다면 많은 실수와 실패를 줄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잘못하고 실수한 순간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찾아 바로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에서 지우개로 지워야 할 몇 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만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타인과의 비교
인간은 늘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혼자 살아갈 수 있지만, 어떻게든 타인과의 교류는 필요하다. 주변에 잘 나가는 사람은 한 두명쯤 있게 마련이다. 그 사람들을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괴롭히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2030 시절 주변 대기업, 공기업 및 공무원 친구나 지인과 비교를 많이 했다.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늘 머릿속에 타인과의 비교가 먼저였다. 감사와 만족을 모르다 보니 내 마음은 항상 공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과의 비교가 무의미한데, 왜 그렇게 그들처럼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타인과의 비교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얼른 지우개를 꺼내 지우도록 하자.
2) 조급함
어떤 목표를 이루거나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나도 그렇다. 그 이유가 바로 “조급함”이다. 한 두 번 시도해보고 잘 되지 않으면 금방 포기한다. 잘 되지 않는다고 성급하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연한 계기로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 좋은 인연을 맺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조급하게 판단하다가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인해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성격이 급한 내가 가장 지우개로 지워야 할 행동 중의 하나다.
3)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증오
내가 생각했을 때 이 항목이 가장 중요하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받거나 반대로 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 내가 평생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나 또한 죽을 때까지 증오하는 사람이 한 두명은 있다. 정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 용서를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미움과 증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시간이 없어 잘 만나지 못하는데, 굳이 미워하는 사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내 머릿속에서 이제 지우개로 내가 미워하거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지우기로 했다.
지우개로 지워야 할 것이 더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타인과의 비교, 조급함,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3가지만 없어도 자신만의 근사하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우개를 들고 오늘은 시원하게 자신의 머릿속이나 마음에서 없애고 싶은 것들을 한번 지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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