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초 회사에서 해고당한 이후 2달 정도 방황하고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계속 놀수는 없기에 일자리를 계속 알아보고 있었다. 괜찮은 자리는 지원하고 나서도 연락이 오려면 시간이 걸렸기에 지원하자마자 당일에 연락왔던 한 업체에 면접을 보기로 했다.
다음날 오랜만에 정장을 차려입고 그 업체에 면접을 갔다. 00역에 있는 작은 사무실로 안은 아담하고 깨끗해 보였다. 들어가니 남자 직원, 여자 직원이 각각 1명이 있고, 안쪽에 대표이사 사무실이 보였다. 여자 직원 안내로 대표이사실로 들어가 사장님이라 불리는 분 앞에 인사드리고 앉았다. 일대일로 면접이 시작되었다. 일단 부드러운 말투로
“황상열씨, 어서 오세요! 나는 OO 건설사에서 사장을 몇 년 했고.. 또 지금 어디 협회에서 근무중이고... ”
약 10분 넘게 자기소개를 하셨다. 본인이 쓴 책도 하나 손에 쥐어주시며 읽으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헉.. 이건 뭐지?’
보통 면접을 보러가면 대표나 임원이 그 지원자의 이력이나 신상을 먼저 보고 질문을 하는 게 맞는데, 여기는 일단 사장이란 사람의 자기자랑이 먼저 나오니 이상했다. 이제 자기소개가 끝나셨는지 본인이 차린 회사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우리 회사는 말이야. 교육사업도 하고 설계일도 하고 물건도 팔고 다 하는 회사야.”
‘흠.. 저렇게 많이 하는데 회사 규모는 왜 이렇게 작지?’
들을수록 뭔가 이상한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돈이 급했던 내 처지에 어디라도 일단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이 커서 참고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나서 나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하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연락이 왔다.
“언제까지 출근할 수 있으세요?”
“내일부터 출근하겠습니다.”
노는 것보단 돈이라도 버는게 마음이 편해서 당장 나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하루가 지나고 그 사무실로 출근했다. 남자직원이 오더니 비어있는 책상에 나를 안내했다.
“황 과장님 자리입니다.”
책상을 봤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작업을 하려면 기본적인 데스크탑 컴퓨터가 있어야 했는데, 연필꽂이와 책꽂이만 덜렁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작업할 컴퓨터가 없다고 하자 그 남자직원이 자기가 쓰는 노트북을 주면서 일단 급한대로 이것을 쓰라고 했다. 나는 2-3일 정도 쓰면 내 컴퓨터가 올 줄 알았으나, 이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내 업무는 딱 봐도 개발이 안되거나 다른 회사에서 검토했다가 안되는 사업등을 마지막에 가져와서 검토하는 일이었다. 딱 봐도 사업이 진행이 되지 않는 일이라 자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없어서 업무시간에 내 시간이 많았다. 사장이란 사람은 내가 면접을 보고나서 보름동안 딱 이틀 사무실에 나왔다. 무슨 협회 일이 바쁘다고 하루에 한번 전화로 지시받는게 다였다.
3주가 지난 시점에 월급날이 왔다. 그래도 놀면서 실업급여 받는 것보단 일하면서 받는 돈이 많았기에 참고 기다렸다. 퇴근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월급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원래 있던 직원들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태연하다. 이상해서 물었다.
“왜 월급날인데 돈이 안 들어와요? 못주는 상황이면 언제 준다고 미리 이야기는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지..”
“여기는 월급날이 있긴 한데.. 사장님이 월급날 앞뒤로 자기 시간나고 여유될 때 줘서 우리도 그냥 그려러니 해요.”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월급날에 제때 월급이 나와야 하는게 정상이거늘.. 난 그날 이후로 일주일만 더 다니고 한달만 채우고 나간다고 직원들에게 이야기했다. 대표에게도 전화해서 월급 안 주면 그만둔다고 했더니 알아서 하란다. 이 무슨 병맛 같은 상황인지...
다음날부터 나가지 않았다. 그후로도 월급을 준다는 연락이 2주 넘게 없었다. 하도 답답해서 전화했더니 처음에는 상황이 좋지 않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약한 마음에 한번 넘어갔다. 그 후로 오랫동안 연락이 없다. 전화해도 받질 않는다. 이메일이나 문자로 안주면 노동청에 고발한다고 연락했더니 다음날 이메일로 답장이 왔다. 입사신고도 안하고 4대보험에도 안 들어서 내가 고발해도 이길 방안이 없단다. 참 어이가 없었다.
노동청에 상의했더니 받을 길이 없단다. 4대 보험에도 들지 않아서 근무한 이력이 남질 않는다게 이유다. 억울했지만 그냥 받는 걸 포기했다. 바로 괜찮은 회사에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어 그 회사에 내가 복수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나는 그 회사에서 무엇을 하고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