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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나를 만나다

동그라미의 끝(시집) – 최원봉

by 황상열

글쓰기를 계속 하면서도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문학 분야이다. 비문학 위주로 오랫동안 글을 썼다. 소설이나 시를 써보기 위해 몇 년전부터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특히 시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비유법을 써서 잘 축약하여 정리해야 한다. 가끔 느끼는 대로 몇 개의 시를 써봤지만 누구에게 보여줄 실력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인생의 내공이 느껴지는 시집 한 권을 읽게 되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본부장님의 아버지가 쓰신 책이다. <동그라미의 끝>이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확 들어왔다. 동그라미는 끝이 없는데, 왜 끝이라는 말을 썼을까 궁금했다. 우선 서문을 살펴봤다.


“135개 주산알. 그리고 108개 염주알. 우리 때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계산은 주산에 의지했다. 특히 은행에서는 주산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살펴보면 주산알은 사각의 틀 속에 135개의 알이 꿰어져 갇혀있고 염주알은 108개의 알이 한 줄에 동그랗게 꿰어져 원을 이루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사각의 틀 속에 갇혀 135번뇌의 주산알로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던 인생살이에서 이제는 108번뇌 염주알로 뺄셈만 하면서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는 삶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이제 70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느낌이다. 컴퓨터가 없던 그 시절에 숫자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주산은 필수였다. 주판을 놓고 주산알을 튕기면서 “1원이요. 2원이요.” 배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위 구절을 인생에 비유한 것이 기가 막히다. 주산알은 사각의 틀에 갇혀있다. 그것을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면서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저자의 심정이 느껴진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절에 있는 염주알처럼 나이가 드니 그 동안 쌓였던 미움과 그리움 등을 하나씩 빼면서 둥굴둥글하게 살아간다는 표현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사람의 인생을 주산과 염주알을 통해 이렇게 공감할 수 있게 적는 것은 쉽지 않다.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마다 그 장에 맞는 시들이 배치되어 있다. 아직 시를 읽어도 그 의미를 잘 모르지만 인상깊었던 시를 소개해본다.


“돈만 벌어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직장일 핑계로 자정 넘기는 일이 허다하고 때로는 와이셔츠 입술연지 묻혀가도 말없이 씻어 주셨지요.... 막내아들 결혼식 날 영양제 주사 힘으로 그렇게 긴 시간을 버텨내더이다. 두 달도 채우지 못하시고 당신은 떠나셨는데 ”당신 나 때문에 고생했어요. 당신 가슴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 했지요.” - 아내 생각 -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자의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몇 번을 읽었는데 저자의 마음이 너무 잘 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춘분 아침 밤새 젖은 눈이 세상을 눌려 버렸다... 아직도 눈감은 놈 귀까지 닫아버린 놈도 있지만 젖은 눈은 막지 못했다.” - 봄눈 오던 날 -


봄이 되었지만 아직 날씨가 추워 눈이 내리는 현상에 대해 시적으로 잘 표현된 문장이다. 따뜻한 봄이 왔지만 젖은 눈을 막지 못했다는 표현에서 무릎을 쳤다.


시를 하나씩 천천히 읽으면서 그 의미를 생각했다. 여전히 느껴지는 의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더 많았다. 하지만 저자가 지금까지 잘 살아온 인생이 시 하나 하나에 잘 담겨져 있는 듯 했다. 나도 평생 글을 쓰다보면 이런 인생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바쁜 일상에 지칠 때 가끔 꺼내어 읽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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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글쓰기> 책 한번 읽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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