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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품자!

트랜스젠더 풍자의 이야기 -

by 황상열

“아버지가 칼을 들고 나를 찌르고 나가라고 하시더라구요.”


오랜만에 쉬는 주말 아침 텔레비전을 켰다.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에 트랜스젠더 풍자가 나왔다. 몇 번 그녀의 방송을 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았다. 원래 남자인데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여자로 바꾼 사람이다. 아버지에게 세 번이나 커밍아웃을 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까지 아들로 키웠는데, 갑자기 여자롤 받아들여달라고 하는 풍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 번째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8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지만 아버지는 위에 언급한 대화를 외치면서 그녀의 커밍아웃을 완강히 거부했다. 진짜 아버지가 칼을 들고 대치하는 모습이 두려워진 그녀는 집을 도망치듯 나왔다. 그 후로 10년간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아빠가 된장찌개 해 줄테니까 집으로 와.”


10년이 지나 아버지의 전화로 그녀는 다시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지만 어색했다. 이미 초등학생 막내는 풍자의 키를 넘어섰다. 아버지는 여전히 성을 바꾼 그녀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자식이기에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다. 트랜스젠더로 성정체성 이전에 풍자에게 더 큰 아픔이 존재했다. 엄마가 빚을 지고 농약을 드셨다고 한다. 병원에서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라고 권유한다. 어린 동생들을 교회에 보내고, 자신이 홀로 엄마 곁을 지켰다. 자신이 잠들었을 때 엄마가 농약을 먹었다는 죄책감이 지금까지 그녀를 괴롭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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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상담받으러 나온 고민이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었다. 쉬지 않고 자신을 혹독하기 몰아부치며 잠도 자지 않고 일에 매달린다. 워커홀릭인지 아닌지 하는 설문지 문항에 모두 해당했다. 이렇게 워커홀릭이 된 이유는 어린시절로 돌아가 다시 가난해 지기 싫고,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조바심이 자꾸 생긴다. 몸이 아파 큰 수술을 받고 푹 쉬어야 하는데,바로 수술하자마자 일을 하다가 하반신 불구가 될 뻔 했다고 한다.

오은영 박사는 풍자에게 이런 처방을 내린다.


“풍자야, 이제 나를 품자. 지금까지 꿋꿋하게 잘 살았어.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귀하고 소중해. 자신을 너무 아프게 하지 말고, 푹 쉬고 그렇게 지내면 좋겠어. 수고 많았다. 보미야(풍자 본명)”

그 말을 들은 풍자는 갑자기 오열했다. 하염없이 울었다. 패널도 같이 그녀의 눈물에 같이 울었다. 그냥 생각없이 보는데 그 장면을 보고 울컥했다. 갑자기 폭포수처럼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진다. 오은영 박사의 처방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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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왔다. 풍자처럼 나도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더 이상 돈 때문에 고민하기 싫어서 뭐라도 하고 싶었다. 수입은 여전히 들쭉날쭉하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기에 지금도 꾸준하게 하려고 한다. 요새 좀 번아웃이 오는 느낌이다. 좀 쉬고 싶지만 또 불안하다.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지금 하는 일은 힘들어도 계속 해야 한다. 주변에서 다 나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많았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나의 내면은 늘 상처가 가득찼다.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이야기했다가 또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이 두려웠다.


세상이 나 혼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외로웠다. 서러웠다. 서글픔이 밀려왔다. 풍자의 모습에 내가 오버랩되었다. 그렇게 5분 정도 오열하고 나자 마음이 좀 시원했다. 그리고 스스로 소리쳤다.

“상열아. 이제 나를 품자. 지금까지 꿋꿋하게 잘 살았어.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귀하고 소중해. 자신을 너무 아프게 하지 말고, 푹 쉬고 그렇게 지내면 좋겠어. 수고 많았다.”

그래. 코로나 2년 동안 쉼없이 달려왔다. 잠시 쉬어가면서 하자. 스스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달려보자. 지금 힘든 당신, 이제 나를 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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