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에 지원해서 친구들에 비해 늦은 입대를 했다. 친구들이 육군의 부름을 받고 배웅하고 나서도 그들이 100일 휴가를 나오면 같이 놀았다. 당연히 제대도 먼저 간 친구들에 비해 늦었다. 99년 5월에 입대하고 2년이 지난 2001년 5월이 되었다.
그 시절은 CD와 카세트 테이프, MP3 파일 모두로 음악을 들을 수 시절이다. 좋아하는 가수가 2년만에 새 앨범을 냈다. 입대 전에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들었다. 맞다. 좋아했던 가수는 바로 유희열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 <토이>였다. 유희열 본인이 노래를 잘 하지 못해서 객원 싱어를 뽑아 자신이 만든 곡을 부르게 했다.
2001년 봄에 나온 앨범의 타이틀 곡이 바로 ‘좋은 사람’이었다. 가사부터 멜로디까지 모두 내 취향이었다. 병장 시절이라 내무실에서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하루종일 그 노래를 틀어놓았다. 지겹고 힘든 군 시절을 견디게 해준 몇 안되는 음악이었다.
20년이 지났다. 유희열은 현재 표절 논란에 휩싸여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13년 동안 진행했던 음악 장수 프로그램에서도 하차했다. 그것으로 논란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튜브 채널에서 지난 30년간 그가 작곡했던 30~40개의 곡이 표절 논란이 진행중이다. 하루가 다르게 유튜브 각 채널에서 그가 만든 노래와 원곡을 비교하여 영상이 올라온다. 정말 들어보면 몇 마디 빼고 똑같다.
아니면 박자를 빠르게 또는 느리게 하고, 악기를 바꾸어 편곡만 다르게 했다. 토이를 20년 넘게 좋아했던 팬으로 그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했다. 하지만 유희열은 표절에 대한 인정은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사과문만 내고 잠적했다.
그가 이렇게 되기까지 <부활>의 리더이자 같은 음악동료였던 김태원의 고백이 결정적이었다. 창작은 고통스러운 작업인데 기존에 있는 것에서 멜로디만 몇 개 바꾸어 자기가 작곡한 것 마냥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 작업을 ‘레퍼런스’ 작업이라 한다. 한 두 곡 정도가 논란이 되어도 하차해야 할 마당에 수십 곡의 노래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제3자 가 봐도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책이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미 글감은 정해져 있다. 그것을 쓰는 사람의 스토리에 따라 차별화된다. 사실 나도 글을 매일 쓸 수 있는 방법이 쓰고 싶은 주제의 기존 칼럼을 찾아서 읽어본다. 그 글의 구성방식은 어떻게 풀어냈는지, 도입부와 결론은 어떻게 했는지 등등 분석한다.
다시 기존 글을 해체하여 나만의 경험을 넣고 도입부와 결론은 어떻게 바꾸고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지 새롭게 해석한 뒤 글을 쓰기 시작한다. 모방하고 나서 다시 나만의 새로운 글을 만든다. 정말 이 시점부터 머리가 아프고 고통스럽다.
음악도 글쓰기 등 무슨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남이 만든 기존 작품을 모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이 기본인데, 유희열은 내 관점에서 그렇지 못했다. 있는 글에서 새롭게 만드는 작업도 정말 힘든데, 아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수반한다고 김태원이 말했다. <부활>의 노래를 한 곡 만들때마다 온 몸이 아팠던 그의 고백이 참 존경스럽다.
매일 글을 쓰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나만의 글을 완성했을 때 그 느낌은 참 좋다. 하지만 유희열처럼 너무 남이 만든 글에서 모티브를 가져야 그대로 쓴 것은 없는지 한번 찾아보고 반성해본다. 창작은 고통이다. 그 고통스러운 작업을 계속하는 모든 작가님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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