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유튜브 영상을 즐겨본다. 축구나 인문학 관련 영상을 자주 보지만, 알고리즘에 의해 메인 창에 뜨는 영상도 가끔 클릭해본다. 왕년에 잘 나갔지만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중년의 나이가 된 연예인들이 나오는 <불타는 청춘>이란 예능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이제는 드라마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오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배우 김광규가 나오는 짧은 영상이다. 그가 자신에게 쓰는 응원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군대 제대 후 인생의 두 번째 객지생활을 이 험난한 서울에서 묵묵히 18년을 보낸 자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참 순간순간 힘들었지만 앞으로도 힘들 때 했던 다짐들 잊지 말고 열심히 살자! 전세 사기에 당했을 때 뺨 많이 때려서 정말 미안... 내일은 또 새로운 해가 뜬다!!”
김광규 배우는 담담하게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그것을 듣는 같은 여자 출연자들은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나도 마지막 전세사기를 당하고 나서 자신의 뺨을 때렸다는 내용에 울컥했다. 정말 힘들게 모아놓은 돈을 사기를 당했다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였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같은 출연자들도 자신의 힘든 시기가 오버랩이 되어 같이 공감하고 울지 않았을까?
10년 전 해고를 당한 후 정처없이 밤거리를 헤메던 날이 떠오른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어이없는 업무 실수로 인해 발주처에 피해를 입혔다. 나 때문에 어려웠던 회사는 수주를 하지 못했고, 그 책임으로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 그런 실수가 없었는데 왜 이런 중요한 시기에 그런 짓을 했는지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괴로움에 술을 마시고 내 뺨을 때리거나 꼬집기도 했다.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른다. 무력감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에 분노했다.
“수많은 황사먼지를 씻어내리는 비가 지금 온 듯이 또, 온갖 비바람이 몰아치고 나서 조용해 지듯이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지나갑니다.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맞았나 봅니다.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덕분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서 살겠습니다.”
담담하게 그는 자신의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읽는 모습에 또 한번 울컥한다. 몰아치는 비바람을 견디면서 열심히 살아내고 성공한 김광규 배우의 그 내공이 잘 느껴지는 글이었다.
10년전 정처없이 거리를 방황하던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가족이 있지만 힘든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없어 속으로만 담아두고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말자고 다짐했다. 어떻게든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일만 있지 않을 것이다. 또 비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무섭지 않다. 그 비바람이 와도 그것을 견디면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그만이니까. 지금 힘든 당신, 그저 지금을 열심히 살자. 비바람이 몰아치고 나면 반드시 햇빛이 쨍쨍하게 비추는 날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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