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대학 2학년 여름방학 시절이다. 친구들이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고 해서 얼떨결에 나도 학원 에 등록했다. 운전을 하고 싶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도 운전 자체를 싫어하는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 학원에 처음 나가는 전날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너무 겁을 먹었나 보다. 뜬 눈으로 밤을 샜다. 결국 첫 날부터 시동을 끄는 등 실수가 있었다. 옆에 같이 탔던 강사 아저씨의 호통 소리에 이틀을 나가지 못했다. 다시는 운전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틀 내내 두려움에 떨었다. 보다못한 아버지가 친구들도 다하는데, 남자가 그렇게 겁이 많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냐고 타박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학원에 나갔다.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심정으로 1톤 트럭에 올랐다. 여전히 긴장했는지 시동이 한번 꺼졌다. 강사 아저씨가 뭐라고 한마디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시동을 켜고 출발했다. 언덕을 넘어서 S자 코스를 지나 무사히 끝까지 완주했다. 내리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괜히 겁먹었네.”
어린 시절부터 고소공포증이 심했다. 육교에 올라가는 것조차 더 무서웠다. 6학년 2학기때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위험한 고가다리를 걸어서 다니기로 친구들과 합의를 봤다. 멀리서 보니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걸어갈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실제로 고가도로 앞에 서니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친구들은 이미 고가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간다. 사실 걸어가는 길이는 20m가 되지 않았지만, 13살의 아이가 걷기에는 긴 거리였다. 학교에 지각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어차피 하기로 한 거 눈을 딱 감고 고가다리를 천천히 걸어갔다. 고가다리 아래로 차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한 번 걸어가고 나니 좀 덜 무서워졌다. 학교 교문 앞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괜히 겁먹었네.”
이 나이가 되어보니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를 계속 만나게 된다. 20대 초반 시절 운전이 계속 두려웠다면 아마 지금도 뚜벅이 생활을 했을지 모른다. 차가 없어서 연애도 제대로 했을지 모른다. 여전히 고소공포증이 남아 있지만, 13살의 내가 고가다리를 건너지 못했다면 여전히 육교도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문제들은 해결하지 못해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문제들은 맞닥뜨리게 되면 피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미리 겁먹고 도망칠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골치아프다고 생각한 일은 지레 겁먹고 도망가기 바빴다. 그렇다 보니 10년전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결국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그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그 문제를 바라보고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크면 무엇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사실 한 번 해보면 별 것 아닌 것이 많은데, 그 시작이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그래도 저지르는 편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어떻게든 시작하면 길은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두려운 것이 있다면 한 번 눈 딱 감고 시도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괜히 겁먹었네.” 라고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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