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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by 황상열

“왜 나는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거야?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10년 전 다니던 네 번째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몇 달간 칩거하다가 다시 회사를 옮겼다. 옮긴 회사에서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같이 근무하는 부서장이 화가 나면 재떨이도 던지고, 매일 2시간씩 불러서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일도 혼자 처리하다 보니 야근은 매일 기본으로 해야했다. 회사 밖을 나오면 한숨부터 나왔다. 하늘을 보면서 매일 소리친 말이 위에 언급한 대사다.


해가 뜨면 출근하고 밤이 늦어서야 퇴근하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이런 생활을 참고 견뎌야 하는지 시간이 갈수록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점점 무기력해졌다. 하루 12시간 일하면 돈이라도 많이 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대기업 연봉 60~70% 수준의 급여를 받았다. 야근비도 1시간 5000원에 책정되었다. 그것도 9시가 넘으면 받지 못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데, 거의 무료봉사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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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공기업을 다니는 친구나 지인들을 부러워했다. 나도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왜 내 현실은 이렇게 시궁창일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많은 방황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저 높은 곳만 바라보면서 거기에 도달하고자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그들의 과정은 외면했다. 오로지 그들이 이루어낸 결과만 보고 판단하다 보니 우울했던 것인데, 그 점을 간과했다. 감정은 불안하고, 마음에는 울분만 쌓였다.


그렇게 스스로 감정 소모를 하다 보니 앞으로 더 잘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생각이 쌓이다 보니 할 수 없다 라는 말만 되뇌었다. 뭔가를 다시 열심히 해야 할 동기부여도 없었다. 용기도 나지 않았다. 결국 이상만 좇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인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의 시간을 무기력하게 보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다시 들어간 회사도 그만두었다. 돈은 벌어야 했기에 그 뒤로도 여러 회사를 전전했다. 그 사이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내 자신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또 가족과 지인,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내 문제를 바로 볼 수 있었다. 특히 여동생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오빠 주제를 좀 알아. 내가 볼 때 오빠는 이상만 너무 높아. 늘 잘 되는 사람들과 비교하니까 오빠가 주눅들잖아.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왜 자꾸 자기를 힘들게 해. 지금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오빠를 챙겨.”


뭔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맞는 말이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항상 머릿속엔 좋은 회사, 이름있는 간판 등만 생각했던 것이다. 굳이 그 타이틀을 얻기 위해 내 자신을 버린 셈이다. 또 수많은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그런 인생을 사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색하고 내린 답이 이거였다.


‘지금 내가 있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자. 이상이란 것이 어찌보면 내가 원하는 목표와 꿈이다. 내가 생각한 이상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정하자.’


이리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많이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업무도 인간관계도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현재 내가 머무는 공간과 시간, 만나는 사람, 마주하는 사물 등 그 순간에 열정과 집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이다. 더 이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너무 높은 이상에 갇혀 있다면 일단 현실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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