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바쁘게 몇 개 업무를 마치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코로나19 덕분인지 예전처럼 식당에 나가서 밥을 먹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 아침 출근길에 도시락을 사온다. 내 책상에서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 익숙하다. 오늘 알고리즘에 뜬 영상의 주인공은 김병현이다.
2001년 가을 내무반에 한 말년병장이 야구중계를 보고 있다. 미국의 월드시리즈 경기다. 김병현이 속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뉴욕 양키스가 만났다. 그 당시 김병현은 애리조나의 구원 투수였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없는 괴물투수였다.
언더핸드 폼의 투수로 공이 아래서 위로 솟구치는 마구가 일품이다. 경기를 보면서 박수를 치는 말년병장은 바로 나다. 제대를 한 달 남기고 모든 업무에서 제외된 나는 내무반에 누워서 편하게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4차전과 5차전 9회말에 김병현은 똑같이 홈런을 맞았다. 이틀 연속으로 똑같은 상황에서 김병현은 멘탈이 완전히 무너졌다. 자신 때문에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6차전과 7차전에서 대역전극을 끌어내며 애리조나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선수가 미국의 월드시리즈 반지를 갖게 되었다. 그 후 김병현은 부상으로 짧은 전성기를 마칠 수 밖에 없었다.
22년이 지나서 다시 애리조나 스타디움을 찾았다. 변하지 않는 경기장 곳곳을 돌아보면서 그는 추억에 잠겼다. 20대 초반 나이에 홀로 아무도 없는 미국으로 건너간 김병현이다. 집이 따로 있었지만 홀로 있는 집에 불을 켜는 게 싫어서 경기장 세탁소 구석에서 잠을 청했다는 인터뷰에 참 찡했다. 경기장에라도 있어야 동료들도 있고 외롭지 않았기에 그 시간을 견뎌냈다고 밝혔다.
스타디움을 한 바퀴 돌더니 잠시 회한에 빠진 듯 하다가 결국 눈에서 한 방울이 흐른다. 감정이 격해졌는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왜 그리 갑자기 울컥하는지 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소에도 강한 모습을 보였던 김병현이 서럽게 우는 것을 보니 그도 이제 나이를 먹은 듯 했다. 사실 그와 나는 동갑이다. 또래 친구가 슬퍼하는 모습에 아마 같이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왜 그리 울었냐는 인터뷰이의 질문에 그 시절 고생한 나에게 많이 미안해서 그랬다고 한다. 애리조나 경기장에서 보낸 시간과 공간에 그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다시 찾은 공간에서 자신이 챙겨주지 못한 20년전의 자신에게 이제야 마음의 빚을 갚고 지금까지 잘 버텨준 것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영상을 보면서 지나온 46년의 내 인생도 조금씩 생각났다. 실패와 성과가 반복했던 수많은 날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수많은 고민을 하며 방황했던 날들.. 그 시간을 지금까지 잘 견디고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아마도 김병현의 눈물을 보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오로지 혼자서 외롭게 버텨야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가 아닐까? 그냥 오늘만큼은 지금까지 잘 버텨준 나에게 고맙다라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이 더 많은 그 인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 사람들이 이 세상을 지탱하는 진짜 영웅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지금까지 잘 견디고 버텨준 자신에게 한번 감사인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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