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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ul 29. 2018

[에세이] 1994년 그해여름

지금으로부터 24년전 1994년 여름은 정말 더웠다.  7, 8월 서울 최고 온도가 38도를 찍었는데, 근래 날씨도 이와 비슷해서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 그 당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나는 바깥 땡볕에서 교련복을 입고 제식수업을 받았다. 교련복 자체가 통풍이 되질 않아 온 몸이 땀으로 도배를 했다. 안 그래도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인데 교련 시간을 마치고 나면 정말 쓰러질 정도였다.

     

토요일 오전 교련 선생님이 외치는 ‘좌향좌 우향우’ 구령에 반 친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훈련을 받은 후 교실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나도 너무 더워서 빨리 교실로 올라가 교복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그 시절 학교에 탈의실이나 샤워실은 당연히 없었으니 씻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 그냥 교복으로 갈아입는 것만으로 행복하던 시절이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갑자기 교련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우리는 또 수업을 받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무섭게 생기신 모습과 달리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했단다. 이제 우리 통일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북한의 우두머리가 죽었으니 곧 새로운 세상이 오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학생다운 생각이었다. 80년대를 거쳐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군사정권이 집권하여 반공을 외치는 시기였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문민정권으로 교체되고 협력 모드로 분위기를 바꾸어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추진하다가 돌연 사망으로 취소된 바 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도 김일성이 죽었으니 곧 남북한에 좋은 소식이 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셨다. 그 더운 여름에 오아시스 같은 시원한 소식이었다.

     

하지만 24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3대 세습을 하면서 체제유지를 하고 있다. 올 봄에 남북한이 관계개선을 위해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었는데, 더운 여름이 되고 나니 지지부진 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열받긴 하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매해 여름은 1994년 여름의 기록을 경신해 나갈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점점 기온이 올라가면서 아마 서울도 곧 40도에 육박하지 않을까 싶다. 더운 여름에 지치지 말고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원하게 보내셨으면 한다.

     

#1994년그해여름 #1994년 #에세이 #황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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