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흔 여섯, 여전히 제자리걸음

by 황상열

토요일 오후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에 가고 나서 동네 헬스장으로 운동하러 갔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지 않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한 기구에 앉았다. 적정 중량을 확인하고 기구로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문자가 왔다. 작가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었다.


새로운 신간이 생각보다 잘 팔린다고 하면서 잘 지내고 있냐는 문자였다. 1년 넘게 연락 없다가 오랜만에 받은 문자가 좀 거슬렸다. 컨디션도 좋지 않고, 회사 일을 포함한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한 주를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예민해진 상황이다.


얼마나 잘 되었는지 호기심이 생겨 한번 온라인 서점에 들어갔다. 예전 책보다 확실히 많이 판매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힘이 쭉 빠졌다.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글을 써서 출간했지만, 책에 따라 좀 다르긴 한데 반응이 썩 그렇게 좋지 않다. 8년 넘게 쓰면서도 히트작이 크게 없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처진 기분이 더 다운되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예전 같았으면 운동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을 나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번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 기구를 들기 시작했다. 그 작가가 열심히 노력하고 잘 기획해서 쓴 작품이다 보니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았을까? 라고 결론 내렸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인데 간과했다.


1시간 정도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같이 지냈던 후배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끊고 요새 나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요새 왜 이렇게 모든 것이 힘에 부치고 마음이 답답했는지 차분하게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회사에서의 위치나 개인적으로 이끄는 모임, 과정 등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좌절.jpg

그것보다도 좀 마음이 울적했던 이유는 글을 쓰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전후 변화를 보고 들으면서다. 남과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나보다 늦게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여 잘 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게 된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악마가 가득한 건지 모르겠다.


처음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몰라서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매일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그것을 모아 책을 츨간하는 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진심을 다해 글을 쓰는 방법, 책 출간 노하우 등을 알려주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 이후 자신이 필요한 것을 다 취했거나 보기에 내가 아직 고수는 아닌 것처럼 느끼고 나서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을 때마다 참으로 힘들었다. 상처를 알게 모르게 많이 받았다. 물론 나 때문에 그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도 분명히 있다.


힘들었지만 참고 견디면서 계속 읽고 썼다. 친한 지인 한 두명을 제외하고 어떤 누구에게도 내 속내를 말할 수 없었다. 외로웠다. 아무래도 내 실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애써 자위했다. 아직 B급도 안되는 실력을 가지고 자꾸 노력하면 된다는 헛된 망상을 갖고 계속 쳇바퀴만 돌고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든다.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속도를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꾸 삽질만 하는 느낌. 뭘 해도 제자리 걸음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8년 넘게 읽고 쓰면서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다시 글을 쓰면서 내 심정을 한번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풀어놓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중이다. 외롭고 쓸쓸했지만 여기까지 잘 견디고 살아온 나에게 다시 한번 힘내라고 셀프 위로를 시전하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몰라도 된다. 많지 않더라도 내 글을 읽고 응원해주는 멋진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늦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읽고 쓰자. 읽고 쓰는 삶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여전히 수행이 부족하다. 좀 더 생각과 이해의 폭을 넓혀보자. 느리게 가도 괜찮다.


#마흔여섯 #여전히제자리걸음 #인생 #자이언트라이팅코치 #닥치고글쓰기 #인생 #라이팅 #인문학 #마흔이처음이라 #당신만지치지않으면됩니다 #자기계발 #에세이 #단상 #황상열 #황상열작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