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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Nov 21. 2023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는?”

유길채가 이장현에게 묻는다. 이장현은 단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대답한다.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유길채를 끌어안는다. 다시 말을 이어간다.      


“많이 아팠지? 많이 힘들었지? 다 끝났어.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오랑캐에게 욕을 당했던 이유만으로 조선에 돌아와서도 전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당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면서 상처받으면서도 내색하지 못했던 길채는 장현의 위로에 그동안의 설움을 날릴 수 있었다.    

  

얼마 전 엄청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연인> 17회 엔딩 장면이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여자를 끝까지 지키고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드라마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 매회 장현과 길채의 사랑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울고 웃었다. 아마 2023년 최고의 드라마로 평가받을 만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11월이 시작되고 나서 오늘까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올 한해 가장 심적으로 힘들었다. 내 잘못도 있겠지만 여러 복합적인 상황으로 약 8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11년 전 다녔던 네 번째 회사에서 나왔을 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그 심정을 다시 느꼈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잘 다스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곱씹어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울컥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마음을 다잡아보자고 다짐하지만, 돌아서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주변에 있는 동료나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표정이 굳어 있다 보니 누가 봐도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 정도다. 


지난주 일요일 아침 지독한 몸살로 아침에 일어날 수 없었다. 눈을 떠보니 이미 가족들은 교회에 갔다. 간신히 일어나 간단하게 요기 후 약을 먹었다. 조금 기운이 올라와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유튜브 사이트 메인 화면에 연인 17회 요약 영상이 보인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꼈다.      

전남편과 이혼을 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된 이장현이 유길채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이제는 장애물이 없어져서 제대로 유길채에게 고백하기 위함이었다. 길채를 찾아간 장현은 아직도 내 마음을 그렇게 모르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은 그냥 길채 당신만 있으면 되는데, 왜 자꾸 피하느냐고 다그친다. 그 후 첫 문단에서 언급한 길채의 질문이 이어졌다.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내 귀로 이 대사가 들어오는데, 갑자기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서럽고 괴로웠는지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내 울음소리만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잠시 보던 영상 플레이를 멈추고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눈이 오랜만에 퉁퉁 부어 있었다. 참고 참았던 감정이 그 대사 한마디에 터졌나 보다.     

 

세수하고 다시 거울을 보았다. 두 손을 들었다. 다시 등으로 내 손을 포갰다. 나 자신을 안아주었다.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인생이란 것이 항상 좋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또 같은 과오를 반복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철부지처럼 지냈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제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다. 나를 안아주었으니 이제 다시 힘을 내는 일만 남았다. 역시 내 솔직한 감정을 글로 옮겨 보니 다시 위안이 된다. 다시 글쓰기를 통해 나를 찾아가려고 한다. 지금 겪는 이 아픔이 좀 더 성장하는 내가 되기 위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혹시 지금 인생이 아프고 괴로운가? 감정이 격해지더라도 <연인>에 나왔던 위 대사를 스스로에게 하면서 안아주자. 결국 나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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