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장인어른의 70살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조촐하게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했다. 나와 아내, 아이 셋 그리고 장인 어른 이렇게 6명이 모인 가족이다. 원래 같이 여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셋째아이의 탄생으로 간단하게 식사로 대체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모여 야외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생신 축하합니다!”
딸과 사위의 축하와 함께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장인어른은 계속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내가 먼저 술 한잔 따라드리며 좋은 말씀 한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 두잔 술을 드시면서 잠시 밖을 바라보시다가 한마디 하신다.
“내가 70년을 살았다니 참 감개무량하고, 돌아보니 정말 시간이 금방 가는 걸 느껴. 하고 싶은 것은 많았는데 그냥 꿈만 꾸다가 세월을 보낸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 가족들과 같이 있으니 행복하네.”
그런 말씀과 함께 장인어른은 식사 내내 웃고 떠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그는 운전하는 나를 바라보며 말씀을 이어나갔다.
“황서방. 7년 정도 같이 살면서 좋은 일도 있지만 나쁜 일도 있었지. 아마 나쁜 일이 더 많았을텐데 고생많았어. 그게 가족이지.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잖아. 내가 너를 보면 늘 쓸데없는 걱정이나 생각이 많은 것 같아. 그냥 단순하게 살아도 되는데, 뭐가 그리 복잡하게 사는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살면서 이 나이가 되어보니 정말 좋은 기억 몇 개만 떠오르고, 걱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한번도 현실로 일어난 적이 없더라구. 아이가 세 명이면 어때? 그냥 자기 형편에 맞게 살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즐겁게 사는 것이 인생이고, 행복이 아니겠어? 그러니까 너무 복잡하게 굴지 말고 단순하게 살아.”
안 그래도 마흔 나이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만나면서 인생과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 장인어른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장인어른의 눈에도 열심히 살지만 생각과 걱정만 많고 늘 표정이 어두웠던 30대 시절 내 모습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이 간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나면서 장인어른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직도 조금은 불편한 점은 있다. 어르신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장인과 사위라는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는 또 다르다. 평상시에도 서로에게 불만은 있지만 표현을 못하고 쌓이다가 한번 폭발하면 큰 상처만 남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장 노릇까지 못하는 사위를 보는 장인어른의 입장에선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다.
위에 말씀을 하신 뒤 장인어른은 피곤하셨는지 잠이 드셨다. 아직 집에 도착하려면 30분 정도가 더 걸렸다. 운전하면서 내내 그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년에 <나를 채워가는 시간들> 원고를 쓰면서 지난 인생에서 좋은 순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그게 행복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을 찾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지금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가 행복일 수도 있다. 장인어른의 말씀대로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서 단순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앞으로 예전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먼 미래의 일까지 미리 걱정하여 지금의 내 행복을 뺏기고 싶지 않다. 내가 썼지만 스스로도 가장 맘에 드는 구절로 마무리한다. 오늘도 나를 채워가는 시간들로 행복을 찾아보려 한다.
“오늘부터라도 작게 소소한 일상에서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아보고 그것을 마음껏 누려 보자. 그것이 채워가는 시간들이야말로 행복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여러분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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