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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Apr 12. 2024

나는 세 개의 불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 30분이 넘었다. 새로 옮긴 회사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같은 계통의 회사다. 지자체나 민간 발주처에서 일을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어떤 분야든 다 힘들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이 분야의 일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이 많다.      


사이트를 분석해서 땅의 용도에 맞게 제대로 건축물이 올라가는지 확인한다. 검토서와 보고자료를 일일이 만들어 때가 되면 발주처에 협의하거나 보고한다.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긴장이 많이 된다. 이제 20년째 일을 하고 있지만 워낙 예민한 성향을 타고난지라 잘 바뀌지 않는다. 발주처나 지자체에서 지적할 때마다 긴장감이 배가 된다. 남들은 그냥 잘 넘기는데,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심하다.    

  

처음 사회생활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 직업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도 배운 것이 이것뿐이다 보니 참고 견디면서 지금까지 끌고 왔다. 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다. 지금 생각하면 다른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도 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실력을 쌓거나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계속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다. 인생이 잘 풀릴 턱이 없었다. 인생은 일상의 합이다. 부정적인 생각과 그저 일이 힘들다고 신세 한탄만 했다. 하루하루 대충 욕만 먹지 않을 정도로 일하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말로만 성공을 외치면서 행동이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쌓이고 쌓여서 30대 중반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시 살기 위해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했다. 마흔 언저리에 만난 두 개의 도구 덕분에 그래도 어느 정도 인생을 바꿀 수 있었다. 이제는 인생의 장애물을 만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영원한 것은 없었다. 계속 좋은 일만 생길 줄 알았는데, 작년 연말 잘 다니던 7번째 회사에서 8년 만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오게 되었다. 그에 맞추어 3년 동안 잘 굴러가던 책쓰기/글쓰기 수업도 하향곡선을 탔다. 다시 한번 인생의 방황기를 겪게 되었다. 회사를 옮기고 나서도 힘든 업무에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아진다.      


개인적으로 인생 자체가 굴곡이 많다고 느껴졌다. 물론 고민이나 걱정은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다. 나보다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도 긍정을 외치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했다. 아마 이것 때문에 인생 자체가 더 좋아질 수 있는데, 나 스스로가 그것을 막고 있다.    

  

이것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세 개의 불 때문이다. 


첫째, 과거에 대한 불평이다. 그 시절에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이미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잊어야 하는데, 자꾸 곱씹는다.      


둘째, 현재에 대한 불만이다. 지금 처한 내 현실이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다. 솔직하게 지금 회사 다니면서 일하는 것이 힘들다. 뭔가 더 나은 대안이 있다고 찾아보지만 쉽지 않다.      


셋째,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하다. 해보지도 않고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이 세 가지의 불을 멀리해야 하는데, 여전히 내 손에 꼭 쥐고 있다. 지난 과거에 먹이를 주지 말고, 오지 않는 미래는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수많은 책에서 봤지만, 정작 나는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미 내 머릿속은 세 가지의 불이 꽉 찼다. 불평, 불만, 불안을 달고 살다 보니 근사한 인생을 만나는 날이 멀어지고 있다. 세 개의 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지 않다. 여전히 나도 타인을 위한 인생을 살고 있다. 스스로 주체가 되자고 외치지만, 그 반대로 살았다.       


밤이 깊어간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가지고 있는 세 개의 불을 멀리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세 개의 불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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