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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un 01. 2024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4월 24일 그날 오후는 지금 생각해도 나에겐 악몽이다. 회사 사무실에서 연속으로 10통 이상 통화했다. 그날따라 같이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느낌이다. 말을 바꾸는 사람, 분명히 전달했는데 못 받았다고 오히려 나를 호통치는 사람, 발주처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사람 등 다양했다. 한 통의 전화가 끝나면 또 다른 전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 이상 통화가 계속되니 목도 아프고 머리는 멍했다.      


마지막 통화가 끝나서야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잠깐 앉아서 숨 좀 돌리려고 하던 찰나에 받았던 한 통의 문자가 악몽의 시작이었다. 딸이 스마트폰을 바꾸는데 보험이 필요하다는 문자였다. 평상시 나였으면 당연히 의심했을 텐데, 무심코 그동안 딸과 주고받은 문자를 보면서 말투도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뭔가 홀린 듯이 보이스 피싱 사기를 당했다.      


안 그래도 올해 여러 좋지 않은 일이 겹쳐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사기까지 당하고 나니 그동안 부여잡고 있던 멘탈 자체가 무너졌다. 머리가 얼어붙었다 라는 표현이 실감날 정도였다. 이미 벌어진 일을 해결해야 했기에 아내가 옆에서 도와주면서 하나씩 해결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마음은 회복이 되지 않았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상은 유지해야 했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는다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힘든 마음을 다잡으면서 회사에 출근하고 일은 계속 이어나갔다.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참고 또 견뎠다. 미리 잡힌 오프라인 강의 일정도 취소하지 않았다. 다만 책쓰기 강의와 독서 모임 등은 양해를 구했다. 잠시 정리하고 다시 재개하겠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난 오늘부터 다시 온라인 강의는 시작하려고 다시 힘을 내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아 아내와 아이가 상담받고 있는 심리 상담 연구소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사실 작년 연말 전 직장의 희망퇴직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그 선생님에게 다시 심리 상담을 받기로 하고, 어젯밤에 다시 온라인으로 만났다. 이런저런 상황을 담담하게 때로 울컥해서 말했다.      


선생님은 엄청난 일을 겪고도 회사를 나가서 일하고, 일상을 유지하는 노력 자체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사실 아내도 일어난 일은 잊고, 힘들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했지만, 매일 오락가락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내 입장에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심리 상담가의 말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일상은 변하지 않는다. 일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만 유별나게 티내고 징징대면서 또 일상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조던 피터슨 교수의 <12가지 인생의 법칙> 책을 꺼냈다. 인생이 힘들 때마다 해답을 찾기 위해 또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서 가끔 꺼내어 본다. 그 책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생에 큰 불행이 찾아온다고 해서 일상에서 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항상 하던 일은 해야만 하고, 최대한 정상적인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큰 질병이나 위기 상황에 놓였을 때는 그 문제에 관해 대화하고 생각할 시간을 따로 정해둔다. 매일 정해 놓은 시간에 그 문제 관해 상의하고, 정해 놓은 시간 외에는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온종일 고민한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인생의 힘든 순간을 겨우 지나오면서 내가 터득한 비결 하나는 시간 단위를 아주 짧게 끊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주가 걱정이면 내일만 생각하고, 내일도 너무 걱정되면 1시간만 생각한다.”     


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 구절이었다. 하루 종일 그 사건에만 매몰되어 다른 일상을 유지하지 못했다. 일상에서 할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자꾸 또 잊고 있었다. 사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어찌보면 가족이다. 아내와 아이들도 힘든 상황인데, 그것을 표현하지 않고, 일상을 매일 살아내고 있었다. 이 구절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리고 시간 단위를 짧게 끊어서 생각하기로 했다. 안 좋은 일은 딱 하루 30분 내외로 할 수 있는 방법만 찾고,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놓았던 일상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지금을 사는 것이 바로 일상이다. 결국 오늘 현재 내가 있는 시간에 집중하는 의미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직 힘들지만, 내 일상에 집중해서 좀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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