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제 마흔이 조금 넘은 한 후배가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인생의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밝힌 그는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한다. 자신이 있는 지점이 통폐합되어 알게 모르게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근황을 밝히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앞으로 천천히 찾아보라고 했더니 마음이 급해져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고 소리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잊지 말라고 전했다. 30대 중반 다니던 네 번째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나서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전까지 내가 원했던 것은 모두 이루었다. 대학 졸업 전 꼭 취업하고 싶었는데, 작은 설계회사에 졸업 일주일 전 합격했다. 32살 이전 결혼하자는 목표를 노력 끝에 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사회적인 성공이었다. 하지만 내 노력이 부족하고 부정적인 감정의 내부적인 요소와 발주처의 갑질 등의 외부적인 요인으로 실패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마흔이란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역량을 키우기에 바빴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기 어렵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일찍 깨닫고 정진하는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 보통 40살 전까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남들은 다 잘 사는데 나만 뒤처진 건 아닌지 등 헷갈린다. 그런 서툰 판단 때문에 여전히 사회가 맞추어 놓은 기준이 잣대가 된다.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후 남들이 선망하는 은행에 취업했다. 어여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누가 봐도 부러운 인생이다. 그런 그가 40살이 넘어 방황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 나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야.”
나는 그 후배에게 한 마디 던졌다. 나도 아직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네가 무엇을 할 때 가장 신나고 즐거운지,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것을 찾아보던지 등 이야기를 전했다. 후배는 한참 내 말을 듣고 있다가 수화기 너머로 소리쳤다.
“형, 나 잊고 있던 사업을 해볼까 해요.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천천히 준비라고 해야겠어요. 고마워요.”
“고맙기는. 인생의 정답은 없어. 그리고 더 이상 우리도 인생의 모범생이 되지 말자고.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인생은 더 이상 그만하자.”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남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봐야겠어요.”
나는 마흔 전후에 만난 글쓰기가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벌써 10년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본업인 직장은 다니고 있다. 벌써 사회 경력도 그렇게 쌓아간 지 20년이 되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마흔 이후 새로운 기회나 만남은 없었고, 오히려 더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을 게 뻔하다.
마흔이 넘은 중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인생의 내공과 경험치가 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도 충분히 겪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은 잘하지 않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할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지 등 정확하게 자기를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지금 하는 본업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이제 더 이상 이 분야에서 쓸모가 없어지면 다른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것이다. 물론 익숙한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문을 닫아야 새로운 문이 열린다. AI가 득세하는 세상이 오면 사회 기준에 충족하여 살아온 더 많은 사람이 인생의 방황을 겪게 될 것이다. 방황을 겪기 전 미리 자신이 원하는 근사한 인생을 살 준비를 하자.
사실 나도 아직 인생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마흔 후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헤맨다. 그래도 이 나이가 되니 더 좋다. 이제야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겪던 나 자신을 잘 알게 되고, 멈추더라도 언제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후배도 곧 자신의 근사한 인생을 찾는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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