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최민식 배우가 한 토크쇼에 나온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행자가 그에게 물었다.
“최민식 배우님께 추억이 담긴 공간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어린 시절을 우울하게 보냈어요. 친구도 거의 없었구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어요. 학교도 가기 싫어서 부모님께 매일 혼났어요. 유일한 탈출구가 의정부에 있는 <중앙극장>이었어요. 아침 일찍 거기에 가서 하루 종일 잘 수 있어서 좋았어요. 누가 깨워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잠만 잘 수 없잖아요.
어느 날부터 내용은 모르는데 영화가 제 눈에 들어오는 거에요. 그냥 계속 봤는데, 어느샌가 영화가 제 인생에 스며들었나 봐요. 연기를 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하고,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가게 되었어요. 그 공간이 제 인생을 바꿔주고 시작하게 했던 추억이 담긴 중요한 곳이네요.”
묵묵히 듣고 있던 진행자는 그 극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배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추억이 담긴 극장이 지금은 경제적인 이유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씁쓸하게 여겼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도 지금까지 살면서 추억이 담긴 공간이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추억이 담긴 공간이 많지만 두 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 곳은 전자오락실, 또 한 곳은 만화방이다. 에세이를 쓰고 싶어 처음으로 썼던 책도 <나를 채워가는 시간들>이란 제목으로 행복했던 시간과 공간을 소개했다. 이 책에도 두 장소가 언급되고 있다. 그만큼 내 감성을 채워준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살고 있던 아파트 정문 건너편에 전자오락실이 있었다. 예전에 비해 게임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 당시에는 오락실에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어린 나이에 호기심이 많았다.
하면 안 되는 짓이지만, 어머니가 모아놓은 동전을 몰래 가져가서 오락실 현관을 조용히 열었다. 나보다 큰형들이 각자 게임 좌석에 앉아서 열심히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너무 신기했다. 그냥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떤 게임이든 보이면 바로 하고 싶었다. 인기외화 시리즈 <에어울프> 시리즈 게임도 있었다. 헬기가 적을 격추하는 게임이다. 50원을 넣고 화면에서 에어울프가 크게 이륙하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게임할 때 즐겁고 좋았지만, 몰래 가다 어머니와 선생님에게 몇 번 걸리고 나서 엄청나게 혼났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은 추후 비디오 게임기로 이어져서 지금 내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게임을 하다 보니 캐릭터가 좋아졌다. 그에 따른 만화책도 많이 보게 되었다. 동네에 큰 만화방이 하나 있었는데, 청소년기 시절에는 방과 후 자주 찾아갔다. 공부하러 학원 간다고 집에 이야기하고, 몰래 만화방에 간 적도 많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시작했던 <열혈강호> 시리즈는 30년 넘게 아직도 연재 중이다.
여러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을 읽고 상상력과 생각하는 힘을 키웠다. 만화책은 읽으면서 그 그림이 내 뇌에 들어간다. 만화책을 덮고 종이책을 읽으면 그 상황에 대한 그림을 그려진다. 이것이 글을 쓸 때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만화책을 보다 출출하면 자장면 하나 시켜서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몇 권 쌓아놓고 읽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최민식 배우에게 극장이 자신의 꿈을 만들고 추억이 담긴 공간이었다. 나에게는 오락실과 만화방이 지금의 글쓰기에 많은 도움을 주고 내 감성을 깨워 다시 살게 하는 장소였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추억이 담긴 장소나 공간은 하나쯤 있다. 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인생에서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공간에 머무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잊고 있던 당신의 추억이 담긴 공간은 어디인가? 오늘 한번 다시 한번 상기시켜 추억에 잠겨 보는 것은 어떨까? 그 공간의 기억이 당신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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