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어느 날 사무실에서 몇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두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와 관련된 통화다. 그날따라 일이 꼬이려고 했는지, 하나같이 나에게 일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왜 일이 진행이 더디냐? 언제 주민설명회를 개최할 수 있느냐? 사업성 분석에 대해 처음에 했던 계약 관계가 다르지 않냐? 등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계속 항의했다. 한 사람도 아니고 몇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힘이 빠졌다.
더군다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 보니 머리가 너무 지끈거렸다. 모든 통화를 끝내고 나니 1시간이 넘었다. 그렇게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한 통의 문자를 보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의심하면서 넘겼을 텐데, 이상하게 믿게 되었다. AI 목소리, 답장 스타일 등을 보고 딸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 큰 금액의 피해를 입었다.
그 이후로 몇 개월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왜 그런 사기까지 당했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나사가 빠진 것 같았다. 작년 연말 실직하고 이직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꾸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다. 그게 매일 반복되다 보니 내 정신 자체가 붕괴되었다. 그 상황이 지속되니 사기를 쉽게 당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어떻게든 견뎌야 했기에 낮에는 일에 집중했다. 돌아오면 자꾸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평소에 의심도 잘했는데, 그날은 왜 의심하지 못했을까?’ 등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너무 괴로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에너지 소진이 많다 보니 그냥 누워만 있었다. 맥주 한 캔 마시고, 그냥 잠들었다. 새벽에 깨면 잠이 오지 않았다. 불면증도 심했다.
자꾸 과거를 곱씹게 되었다. 소가 여물을 먹고 안에서 되새김질 하는 것처럼 자꾸 지나간 일을 곱씹는 행위를 국어사전에서 보니 ‘반추’라고 한다. 인생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비슷한 일이 생긴 적이 있는지 과거를 돌아보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면 어떻게 헤쳐나왔는지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반추는 자꾸 반복해서 과거를 돌아보는 늬앙스가 강하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계속 들쑤시다 보면 오히려 거기에 매몰된다.
내가 그랬다. 왜 나에게만 실직이나 해고가 반복되는지 궁금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까지 사회생활 만으로 20년 동안 9번째다. 내가 스스로 그만둔 적이 많지만, 비자발적으로 나가게 된 것도 2번째다. 12년 전 다니던 네 번째 회사에서 해고당했을 때 참 비참했다. 작년 연말 약 8년 다니던 7번째 회사에서 희망퇴직 당했을 때 처음보다 덜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너무 추웠다.
일생에 이런 일이 한 번은 당할 수 있지만, 반복해서 당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지난 과거에 먹이를 주지 말라고 했지만, 자꾸 곱씹게 되니 오히려 일이 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다시 책을 들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있을지 찾아보았다.
정답은 ‘반추’가 아니라 ‘성찰’이었다. 반추가 계속 과거 일을 떠올리며 리와인드하는 개념이라면 성찰은 그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서 해결하거나 적용할 수 있는 사항이 있는지 찾아보는 일이다. 더 쉽게 말하면 반추는 그 일에 대한 원인만 돌아보는 행위고, 성찰은 더 나아가 해결책을 찾아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윤서진 저자가 쓴 <너를 미워할 시간에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건강한 성찰은 사건이 발생한 직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라고 나온다.
성찰을 통해서 사기 사건 이후 나는 다시 어떻게 하면 돈을 회복할 수 있을지 집중하고 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회사 일에 집중하면서 다른 일로 돈을 추가적으로 버는 방법이다.실직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구직 사이트에 지원하고, 아는 지인을 통해 일자리가 있는지 연락했다. 그렇게 운이 좋게도 다시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 적응하고 있다.
계속 ‘반추’만 했다면 감정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성찰’을 통해 내 문제점과 잘못을 파악하여 개선 방안을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다 보니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늘부터 반추가 아닌 성찰을 통해 근사한 인생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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