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금 눈부신 오늘을 살자 (눈이 부시게)

by 황상열

요새 JTBC 드라마의 퀄리티가 상당하다. 바빠서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 별로 없지만, 드라마 마니아로 평이 좋은 드라마는 가끔 동영상으로 몰아서 보는 편이다. <스카이캐슬> 이후로 또 하나의 명작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제목이 <눈이 부시게>로 한지민과 김혜자 선생님 캐스팅으로 방송전부터 많은 화제를 뿌렸다. 처음 볼 때는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인줄 알았는데, 막판에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김혜자 선생님의 예전 기억으로 밝혀지고 나서 조금 먹먹했다.


마지막회에서 김혜자는 시계를 차고 있는 휠체어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과거의 김혜자(한지민 역)는 사회부 기자였던 남편 이준하(남주혁)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짧은 행복을 누린다. 11월 22일 결혼 기념일 케이크를 사놓고 기다리지만, 이준하는 정보부 사람들에게 잡혀간다. 그 소식을 들은 김혜자는 오지 않는 남편을 찾으러 경찰서에 가지만 만나지 못한다. 결국 이준하는 고문으로 사망하고, 유품을 확인하던 김혜자는 자신이 선물한 시계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다. 경찰의 팔목에 차고 있는 그 시계를 향해 달려들어 경찰의 손등을 긁었지만 찾지 못했다.


현재의 휠체어 할아버지가 남편을 고문했던 그 경찰관이었다. 그는 김혜자에게 시계를 돌려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과거의 김혜자(한지민 역)는 아들에게 무심하게 굴었지만, 다리가 불편한 아들 대상(안내상 역)이 넘어질까봐 일찍 일어나 눈을 쓸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아들은 여전히 눈을 쓸고 있는 현재의 김혜자에게 이제 그만 쓸지 말라고 하며 오열한다. 그녀는 점점 치매가 심해져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들 대상은 김혜자에게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물어본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저 그런 날이 행복했다. 솥에 밥을 앉혀놓고 막 걷기 시작한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 노을을 볼 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 김혜자가 그녀의 가장 눈부시고 행복한 날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혜자는 25살의 과거로 모습(한지민 역)으로 돌아가 남편 이준하와 재회하며 독백한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또 행복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다. 대단하지 않고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말라. 오늘을 살아가라.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


이 독백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지난 시절은 늘 과거에 먹이를 주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지냈다. 서투른 인간관계로 있을 때 잘하지 못하고, 떠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고 슬퍼했다. 또 나중에 돈 많이 벌고 나서 무엇을 해야지 하면서 뭐든지 미루었다.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껴지며 행복하지 않다고 여겼다.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데, 업무가 너무 많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살아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기적이라고 여겨졌다. 살아있기 때문에 저런 불평불만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되자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해지고,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김혜자의 독백처럼 그리 대단하고 별거 아닌 오늘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눈부시다. 이제 70이 다 되신 부모님이나 장인어른의 말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인생은 찰나와 같다고. 한 순간의 꿈에 불과하다고.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간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라고.


그래!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눈이 부시게 그런 멋진 날을 매일매일 채워가는 인생을 살아보자고 다짐해본다. 당신의 눈부신 그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눈이부시게 #김혜자 #한지민 #남주혁 #드라마 #리뷰 #황상열

0000048933_001_20190313064008830.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