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들을 만나고 온 날부터 더 의욕이 상실되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냥 내 방에 틀어박혀 누워만 있었다. 아내가 밥을 먹으라고 해도 밥맛이 없다 보니 몇 숟가락 뜨고 자리를 일어나 다시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뉴스에서만 보던 은둔형 외톨이(히끼꼬모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직장 다니던 시절 주변 선배, 동료 및 후배들이 힘들다고 하면 먼저 손내밀고 도와주고 했는데, 정작 내가 필요할 때 연락하니 겉으로만 하는 위로만 건넬뿐 다 모른척 했다. 역시 내가 처지가 어려워지니 그 동안 맺었던 인간관계도 다 허상으로 보이면서 사회에서 믿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냉정한 현실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지는 대인기피증 초기, 만사가 다 귀찮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드는 우울증 초기 증상까지…… 사회생활 8년차에 지금 그만둔 회사도 4번째다 보니 잦은 이직으로 인해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임금체불과 참을성이 부족하여 버티지 못했던 상황등이 다 겹쳐져 일어난 결과였다. 다 내가 선택하여 벌어진 상황이라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했다. 동기들과 술자리 이후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어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방에서만 지냈다.
온전히 백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이는 아내에게 내팽겨치고 신경도 쓰지 못했다. 하루 일과는 밤새 컴퓨터로 게임하고 일자리 찾아보다가 늦게 잤다. 아침 늦게 일어나서 밥을 먹고 무기력하게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만 쳐박혀 시간만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다 내 선택으로 인한 잘못인데 나만 왜 이렇게 된건지 남탓 사회탓만 했다. 조금만 힘들면 징징징 대는 나이만 30대 중반인 철없는 어른 아이였다. 사람들이 만나자고 해도 다른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다. 실업급여를 타기 위해 노동청에 가고, 가끔 첫째아이를 어린이 집에서 데려오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매일 얼굴에 인상만 쓰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은 하지만 해답이 없어 늘 불안했다.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부정적인 마인드로 문제를 바라보게 되니 나쁜 생각만 들었다. 통 입맛이 없어서 먹지 않으니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래 조금만 어떤 문제에 신경을 쓰게되면 장염이 심해져서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하거나 식사를 하지 못했다. 심신은 계속 지쳐가고, 아내도 이런 내 모습에 더 이상 신경쓰기 싫은지 자기 할 일만 했다. 아마도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의 고통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아내는 매일 새벽 고통으로 신음하는 나를 걱정하며 새벽기도를 했다. 그런 생활을 한 달 넘게 하고 어느날 우연히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지?’
눈은 다크서클로 이미 깊이 패어져 있고, 얼굴 피부에는 뾰루지가 가득했다. 깎지 않는 수염은 엄청나게 내 얼굴을 덮어 있었다. 그것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스스로도 이전과 정말 확연하게 차이가 보이니 깜짝 놀랐다. 생기없는 창백한 내 얼굴이 극단적인 스트레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연예인들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했다. 한달 넘게 무기력하게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면서 정말 사람이 이렇게도 죽을 수 있겠구나 라는 나쁜 생각도 가끔 한 적 있다. 이 모습을 보고 난 뒤 처음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이렇게 계속 지내다가 잘못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정신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다시한번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심사숙고 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지금과 같은 3월이다 보니 햇살도 따뜻했다. 집 근처 공원부터 한바퀴 돌면서 나의 처지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부터 고민하기로 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왜 나오게 되었는지……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는지…… 동네와 거리를 몇 바퀴 돌면서 그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일주일을 같은 시간에 산책을 나가면서 계속 사색했다.
객관적으로 내가 이 회사를 나오게 된 건 나의 잘못도 크다고 판단되었다. 4년이 좀 안되는 재직기간동안 업무로 받은 스트레스를 술을 마시면서 풀었던 나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가끔 폭음으로 인하여 지각 또는 무단결근하여 업무에 지장을 준 날도 많았다. 경영진입장에서 보면 자기관리가 안되고 근태에 문제가 있는 직원으로 볼 수 있다. 1년이 2차례 정도 이런 행동이 반복되는 같이 근무하는 직원도 좋게 볼 수 없었다. 또 업무는 빨리 처리하는 편이지만 꼼꼼하지 못해서 잔실수가 많았다. 그것으로 인해 발주처에 피해를 준 적이 있다 보니 경영진이 보기에도 회사에서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또 가끔은 감정조절을 못하여 상사와 트러블도 가끔 생기다 보니 아마도 이런 것들이 쌓여서 나오게 되는 빌미가 되었다고 본다.
혼자 생각하다 보니 그래도 친한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이런 나의 문제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같이 근무했던 후배를 만나 회포를 풀면서 물어봤다.
“지금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무엇이 문제였을까? 니 생각을 좀 듣고 싶은데… 솔직하게 이야기 좀 부탁할게.”
“형! 내가 보기엔 다 좋은데 너무 절제를 못한다고 할까? 감정표출 문제도 그렇고.. 그런 상황에 화를 안내도 될 상황이고, 상사에게 너무 자기 할말을 다한다고 할까? 형이 자존심이 세서 그런지 남의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하는 것도 알지? 술먹고 가끔 실수하는 것도 치명적이잖아……”
“고맙다. 그런데 너무 솔직하게 말해주는 거 아니야? 하하하.”
솔직하게 말해준 후배에게 참 감사했다. 예전 나였으면 그런 조언이 달갑지가 않았다. 조언을 하면 듣고 고치면 되는데…… 역시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세서 나에 대한 문제를 인정하지 않은게 문제였다. 아내도 나의 이런 점을 많이 지적했다. 그때서야 내가 내 문제를 알고 있지만 인정을 먼저 하는 것이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 열쇠였다. 그렇게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현실인식을 하는 것부터 다시 초점을 맞추었다.
그 후로 며칠동안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사색하고 친구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스로 사색하면서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는데, 해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문득 학창시절, 또 가까이 군대시절 힘들 때 책을 읽으면서 답을 구한 기억이 떠올랐다. 무릎을 쳤다.
‘아! 이거다!“
그렇다.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은 ‘늘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기쁨을 알았는데 그것은 책 속에 항상 답이 있고, 어려울 때마다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다시한번 독서를 통해 나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면서 천천히 답을 구해보자’는 것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초췌한 모습에 놀란 내가 다시 한번 장고 끝에 인생의 변화를 위해 던진 출사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