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시청에 일이 있어 출장을 가는 길이다. 지하철에 타니 빈자리가 보인다. 요새 좀 피곤해서 냉큼 달려가서 앉았다. 앞자리를 보니 20대로 보이는 연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남자는 장미를 들고 있고, 여자는 수줍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 시작하는 연인의 느낌이랄까? 같이 설레는 느낌이다. 다시 시선은 그 옆자리에 엄마와 어린아이가 앉아 있다.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그 연인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중이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장미 사와.”
남편과 통화하는 것 같다. 상대방은 뭐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전화기를 끊고 난 그녀의 표정은 썩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아이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00야.. 오늘이 로즈데이라고 하는데, 니네 아빠는 그런 날도 모르냐..”
나도 오늘이 로즈데이라는 것을 오랜만에 알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5월 14일 미국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던 마크휴즈가 가게 내 모든 장미를 사랑하는 연인에게 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29살에 큰 아픔을 겪고 한동안 연애를 하지 않다가 30살 전후로 다시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소개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2007년 봄 예전 회사 상사분 소개로 만났던 여성 직장인이 있었다. 따뜻한 봄날씨에 그녀와 어린이 대공원도 가고, 영화도 보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아직 고백하기 전이었고, 공교롭게도 그녀의 생일이 5월 14일이었다. 소개팅 후 5번 정도 만났고, 그녀도 싫어하는 것 같지 않은 것 같아 생일선물을 주면서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생일에 식당도 예약하고 귀걸이 선물도 준비했다. 약속시간에 맞추어 식당에 가서 먼저 기다렸다. 일이 늦게 끝나 조금 늦는다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30분 정도 지나자 그녀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미안하다는 사과를 괜찮다고 받은 나는 식사가 나오기 전에 생일축하 인사와 함께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포장을 뜯고 선물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이상하다. 좋아해야 하는데.....
아까 지하철에서 본 그 엄마의 표정과 오버랩된다. 썩은 미소다...
“왜 귀걸이 선물이 별로 마음에 안 드세요? 제가 좀 센스가 없긴 해서....” (뭐지?)
“저는 생일선물로 꼭 장미를 받아야 해요...” (정말 뭐지?“
“네??” (정말 무슨 상황인지 몰라 난감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세요?” (응? 니 생일이지...)
“00씨 생일이잖아요. 축하해요!”
“생일도 맞는데 더 중요한 날이에요! 정말 몰라요?” (정말 모른다고..)
“5월 14일 로즈데이 모르세요?”
“로즈데이요?” (처음 들어봤다.)
“네 장미 주는 날!이라구요.”
“아. 미안해요. 이따 나갈 때 꽃가게 가서 하나 사줄게요.”
“정말 센스가 바닥이네요. 우리 안 맞는 것 같아요.” (이 상황은 정말 뭐지?)
그리고 그녀는 중간에 나가버렸다. 이후 내 연락은 받지 않았다.
12년전 그녀 때문에 로즈데이가 갑자기 생각났다.
#로즈데이 #5월14일 #소개팅녀 #장미 #에세이 #황상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