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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Aug 07. 2019

나는 데릴사위입니다

일찍 퇴근한 밤 오랜만에 집에 오신 장인어른과 술 한잔 했다. 그는 세달 전부터 고향 안동 큰집에 거주하면서 한달에 한 번 집에 오신다. 결혼하고 2년간 신혼생활을 하고 혼자 사신 장인어른을 모시고 8년을 같이 살았다. 처음에는 장인어른을 내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주위에서 같이 사는 게 힘들텐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아내가 외동딸이고 장모님도 계시지 않았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힘들더라도 내가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장인과 사위의 동거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역시 내가 느끼는 아버지와 아버님의 온도 차이는 꽤 달랐다. 아마 거꾸로 아들이 아닌 이상 장인어른도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많이 느꼈을 거라 짐작한다.     


같이 사는 첫날부터 장인어른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했지만, 내 마음 속 어딘가는 많이 불편했던 거 같다. 특히 술을 좋아하시는 장인어른과 즐겁게 술을 먹다가 가끔 취하시면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엄청나게 쏟아내셨다. 내가 보기에 상남자 스타일인 아버님은 평소에는 혼내고 싶지만 뭐라고 하신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계속 쌓이다가 술의 힘을 빌려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게 아닐까 추측한다. 그 중에서 가장 내 가슴을 후벼팠던 한마디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너 돈도 없는 놈이 내 딸과 어떻게 결혼했냐? 남자가 집은 사올 수 있는 능력은 되야 되는 거 아냐? 지금 이렇게 같이 사는 것도 좀 더 부끄럽지 않냐?”    


좀 술에 취한 장인어른은 나에게 했던 말을 다음날 물어보면 기억하지 못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참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났다. 딸 가진 부모입장에서 나에게 잔소리를 한 건 다 이해한다. 돈이 없이 결혼했던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아내에게 미안했다. 집 한 채 사줄 능력이 없으면서 나를 믿고 결혼해준 그녀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부모님도 혼자 계신 아버님과 같이 사는 게 어떠냐고 해서 그 조건으로 결혼을 하게 된 것도 있다.     

그 전까지 돈에 욕심이 없었지만, 결혼 후 현실을 많이 깨닫게 되었다. 아직도 돈 없는 사위를 나무라는 장인어른 때문에 스트레스를 조금 받기도 한다. 그냥 아직 내가 못난 탓이다. 같이 살게된 2012년부터 4~5년간 1년에 1번씩 꼭 이런 잔소리를 들었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도 같이 사는 데릴사위를 먼저 챙기는 건 아버님 뿐이다. 아내는 애들을 케어하랴 바쁘다. 나도 장인어른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면 전화도 잘 드리지 않는 불량사위다. 같이 살면서 아버님께 인생을 배웠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정도를 지키며 다 내려놓고 살면 좋은 날이 온다고 늘 말씀하신다. 이제 만 70이 되신 그는 나이가 들면서 계속 약해지고 아픈 것이 싫다고 하신다. 처음 아버님을 뵈러 갔을때가 환갑이셨는데, 계속 말씀도 없으시고 술만 따라주셨다. 딸만 괜찮다고 하면 결혼은 허락하겠다고 쿨하게 말씀하신 게 아직도 기억난다. 그후 같이 살면서 그렇게 강하게 보였던 장인어른이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많이 느꼈다. 여전히 서툰 사위다 보니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오늘 맥주 한잔 따라드리며 처음으로 아버님께 말씀드렸다.    


“이제껏 지금까지 못난 사위 챙기느라 감사합니다. 용돈도 변변히 드리지 못하고 저는 해드린게 없는데 아버님께 늘 받기만 했습니다. 지금 사는 집을 살때도 장인어른 안 계셨으면 매매를 못했을 거구요. 이번에 차도 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매번 같이 술한잔 하자고 해도 아프고 바쁘다는 변명을 했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건강 조심하세요.”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오글거려 못했다. 그러나 데릴사위로 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버님.. 아니 장인어른 오래오래 이 서툰 사위 옆에 건강하게 남아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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