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의 추억..
“그 상황에 지금처럼 휴대전화만 있었어도 공중전화를 붙잡고 삐삐를 듣고 치는 시간을 충분히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신천역으로 가서 몇 번의 메시지를 듣고 나서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삐삐를 듣고 치고 하는 그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참 좋았다. 지금은 바로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를 할 수 있어서 편리하지만 그 기다리는 애틋함은 덜한 거 같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의 약속은 지금 돌이켜보면 참 애틋하고도 행복했던 기억이 많다.”
-<나를 채워가는 시간들> 중에서, 황상열, 2017 -
태풍이 오는 토요일 오후 바람을 뚫고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문고를 방문했다. 지하철을 타고 종각역에 내려 지하보도를 지나는데 오래된 공중전화가 눈에 띄었다. 지갑에 동전 몇 개가 있길래 공중전화에 투입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가 시작되자 얼마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돈 떨어지는 게 보인다. 500원을 넣었는데 인사와 안부등 몇 분 통화하지도 않았는데 끊겼다.
휴대폰을 쓰지 않던 시절이 기억난다. 90년대 후반 몇 명의 대학동기들이 시티폰, PCS를 쓸 때 삐삐를 가지고 있던 나는 필요할 때마다 빌려쓰곤 했다. 그 외에는 학교곳곳에 설치된 공중전화에서 대부분 통화를 하거나 삐삐 음성을 확인하곤 했다. 동전을 항상 여분으로 들고 다녔다. 급하게 전화할 일이 생기면 동전이 없을 때 가게에 가서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1999년 군입대 3개월을 남기고 소개팅을 통해 만났던 그 친구와 연락할 때도 나는 늘 공중전화를 사용했다. 이미 휴대폰을 쓰고 그녀가 나에게 삐삐로 음성을 남기면 그것을 듣고 전화를 하던 패턴이다. 입대 후에는 콜렉트콜로 공중전화를 자주 이용했다. 낯선 군생활에서 일주일 2~3회 정도 콜렉트콜로 통화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하지만 ‘out of sight out of mind’말처럼 입대하고 딱 1년이 지나고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를 정확히 듣지 못해 휴가를 나와 미친 듯이 공중전화를 붙잡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녀의 전화기는 반응이 없었다. 복귀 전날 겨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직접 만나 이유를 들었지만 이별의 후유증은 꽤 오래 갔다. 부대로 복귀하고 나서도 한동안 잊지못해 공중전화를 들고 받지도 않는 그녀의 전화에 임창정의 ‘소주한잔’ 가사를 부른 적도 있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오랜만이야...”
지금은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전화번호와 통화 버튼만 누르면 연락이 가능한 시대다. 통화가 되지 않는다면 메시지로 간단히 할 말을 보낼수도 있다. 그만큼 소통은 빨라졌지만, 예전의 애틋함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지금 주머니에 동전이 없어 전화를 하지 못하거나 공중전화 줄이 너무 길어서 앞사람이 언제 전화를 끊을지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그런 아날로그 적 시절을 직접 경험하고 겪으면서 얻었던 감성들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아있으니. 오늘도 거리를 걷다가 공중전화가 보이면 한 통 걸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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