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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Jan 04. 2020

나는 아직도 서툰 아빠다

아빠씻기 싫어싫다고왜 씻어야 하냐고나 엉덩이만 씻고 팬티만 갈아입을 거야!”

또 시작이다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엉덩이를 제대로 닦지 않고 나온 모양이다팬티에 똥이 조금 묻었다고 난리다결벽증까진 아니지만 깨끗함을 추구하는 이제 7살 둘째 아들이다매일 밤 화장실에 씻기 들어가기 전에 씻기 싫은 아들과 씻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는 나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이왕 엉덩이도 씻는 김에 손과 얼굴발도 같이 씻고 이빨도 닦고 나오면 좋잖아어차피 씻을 꺼 한번에 씻자.”

싫다고한번 더 놀고 씻을 거라고아빠는 왜 나한테만 그래!”

지금 시계를 봐밤 10시가 이미 넘었어이제 자야되니 늦기 전에 빨리 씻어야지.”

아니야!! 엉덩이만 씻을거야!”

맞고 씻을래아님 그냥 옷 입은 채로 들어가서 씻을래?”

계속되는 떼쓰기에 결국 나는 폭발했다겁을 먹은 아들의 표정이 보인다.

..또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네아이에게 화를 내지 말자고 했는데..’

또 후회하는 내 모습을 본다거의 매일 반복되는 패턴이다결국 다시 달래러 그 앞에 선다.

폭포 놀이 하자머리에서 발끌까지 떨어지는 폭포 놀이 알지?”

여기서 말하는 폭포놀이란 샤워기를 틀어 아들의 머리 위로 올려 놓으면 물이 쭈욱 떨어지는 놀이를 말한다씻기 싫어하는 아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내가 만들어 낸 하나의 방법이다.

폭포놀이 재미없어안 씻는다고!”

더 강력한 폭포놀이 하자.”

그게 뭔데?”

아들의 눈빛이 반짝인다더 강력한 폭포놀이는 아예 샤워기를 고정하고 아이의 머리 위로 가장 세게 물을 틀어 떨어뜨리는 놀이다궁금해하는 아들의 표정이 조금 바뀌고 있다.

어여 옷 벗고 들어가자들어가면 알 수 있어더 강력해진 폭포놀이!”

아빠재미있겠다.”

옷을 벗고 들어간다샤워기 앞에 세워놓고 물을 틀었다촤아아~~

차가워아빠 차갑잖아!!!”

..미안하다아빠가 온도를 미리 안 맞추었다.”

아빠차갑잖아!!!”

2차 전쟁이 시작되었다다시 아들을 뒤에 세우고 샤워기 물의 온도를 맞추기 시작한다.

찬물과 뜨거운 물의 딱 중간 지점에 맞게.

이제 미지근 한 물이야다시 폭포놀이로 갑니다!”

뜨겁잖아아빠

만져보니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왔다아들은 다시 씻기 싫다고 땡깡이다.

물의 온도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식은 땀이 흐른다.

이제 됐지?” 일단 내 손에 물의 온도를 확인하니 이번에는 정말 미지근했다.

촤아아~~ 아들의 머리 위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 정말 폭포가 세졌어!” 신나하는 아들을 빨리 붙잡고 머리부터 발끌까지 비누칠을 하고 바로 샤워기에 세운다불과 2분이 체 안 걸렸다. 3분을 더 폭포놀이를 시켜주고 나서야 아들은 룰루랄라 나왔다뒤에 나오는 나는 힘이 하나도 없다.

수건으로 그를 닦아주고 새 옷을 갈아입혀 주려고 하는데,

아빠그 옷이 아니잖아내가 고르러 갈거야!” ..진짜입에서 또 욕할 뻔 했다.

너 혼자 입어!”

소파에 앉았다왜 아내를 포함한 엄마들이 육아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한지 알겠다.

옷을 입고 놀아달라는 아들을 잠시 외면한 나는 아직도 서툰 아빠다.

#나는아직도서툰아빠다 #세아이아빠 #어쩌다보니 #아이들 #작가 #글 #에세이 #단상 #황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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